• 국가부채 증가율, 그리스의 4배  
      
     국가부채가 1997년에서 2009년까지 899.9% 늘었다.
    최성재    
      
      그리스의 국가부도가 가시권에 들어온 듯하다. 그리스의 3년 만기 국채 이자율이 2011년 9월 13일 부도 직전의 중소기업 어음보다 못한 52.6%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172%까지 치솟았다. 독일과 프랑스, 특히 독일이 외교적인 수사(修辭)로 도우는 척하는 게 아니라 5만 톤급 전함 비스마르크호에 포탄 대신 유로화를 가득 싣고 아테네 외항으로 달려가 실질적으로 돕지 않으면, 그리스 국민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허물어진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을 부여잡고 영험을 잃은 지 2천년도 넘은 올림포스 12신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이다.

    유로권에서 나 홀로 잘 나가는 독일은 13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부채가 줄었다. 2009년 1조5265억 달러에서 1조4825억 달러로 440억 달러 줄었다. 서구 복지국가에서는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게 인력으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이것은 상징성이 대단히 크다. 그러나 아직은 장기적인 추세인지, 1회적 사건인지 모른다. 따라서 그 정도 여력으로는 2000년 이전 조상의 음덕과 쪽빛 지중해에 점점이 흩어진 리아시스식 해안 섬들의 아름다운 풍광에 기대어 먹고 사는 불우이웃을 돕기 어렵다. 빚으로 흥청망청하다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계산서에 머리를 파묻고 비계 엉덩이를 치켜든 꼴불견 이웃을 돕기 어렵다.
     
      OECD 자료에 따르면, 그리스의 국가부채는 1997년 1381억 달러에서 2009년 4300억 달러로 늘어났다.
    12년간 211% 늘어났다.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0.0%에서 147.3%로 늘어났다. 1980년대 미국을 삼킬 듯하던 일본은 현재 GDP 대비 국가부채가 2009년 199.7%로 세계1위이지만(OECD에는 일본의 2010년 자료가 없어서 2009년을 기준으로 함), 1997년에는 100.5%였다. 성장률이 그리스의 2분의 1 정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가 먼저 무너지고 있다. 그것은 기본체력이 약해서 그럴 것이다. 일본은 벌어놓은 재산이 워낙 많아서 채무 못지않게 채권이 많고 중산층이 세계에서 가장 두터워 사회적 갈등이 적었다. 그런 일본도 미국에 앞서서 국가신용이 하락했다.
     
      한국은 어떨까?
    1997년 외환위기가 밀려오던 해에 한국의 국가부채는 298억 달러밖에 안 되었다. 그러던 것이 2009년에 2977억 달러로 핵폭발했다. 899.9%나 증가했다. 그리스의 4.26배다!

    GDP에 대한 비중은 5.9%(필자의 추산)에서 33.9%로 늘어났다. 경제도 꾸준히 성장했지만, 국가부채는 탄젠트 곡선처럼 가파르게 치솟았다. 경제성장률을 감안하면 474.6% 증가했다. 경제성장을 제외하면 그리스는 47.3% 늘어났고 일본은 98.7% 늘어났다. 게다가 한국은 소비 증가로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국가정책에 발맞추고 입 맞추어, 가계부채도 그 못지않게 늘어났다. 2011년 6월 현재 가계부채는 993조원에 달한다. 거기다가 국가부채의 분식회계인 공기업부채가 국가부채와 비슷한 규모인 386조원(2010)으로 늘어났다. IMF나 OECD는 공기업부채는 국가부채에 포함하지 않는다. 이유는? OECD 회원국은 공기업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비중이 적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은 기업의 부채다. 이리저리 다 합한 총부채비율(Total Debt to GDP)이 세계 4위로 올라섰다.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 이후 세 정부는 국가부채와 공기업부채 그리고 가계부채 늘리기에선 거의 똑같은 정책을 펼쳤다. 집권당이 한 번 바뀌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었는지 불분명하다. 각각 입맛에 맞는 사업이 달라 날카롭게 대립하는 것 같았지만, 1997년까지 세계최고 재정건전성을 확보한 것이 마치 자신들의 공로인 양,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는 빌미로 미래세대의 세금을 앞 다퉈 끌어다 썼다.
     
      이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국가부채와 공기업부채를 획기적으로 늘려서 한국을 제2의 아르헨티나, 제2의 그리스로 만들지 못할까 안달이다. 날마다 복지 선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야당이 A라는 무대포 무상복지를 무대에 올리면, 여당은 그것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면서 B라는 선동적 선심복지를 선보인다. 야당이 대학등록금 반액 공약을 지키라고 다그치면, 정부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리는 척하는 사이에 여당이 불쑥 선수를 쳐서 김을 뺀다. 여당 소속 지방정부의 한 수뇌가 나라 구하기 총대를 메고 ‘무상급식은 가난한 사람의 돈으로 부자에게 공짜 점심 먹인다!’며 단계적 무상급식을 내세워 정치 생명을 걸면, 정부든 여당이든 피식피식 웃거나 먼 산을 쳐다보거나 민심을 모른다며 노골적으로 훈계하고 짜증을 낸다. 보수 성향 이외 범야권은 중앙선거위의 ‘눈 감아 주기’ 후원을 받아 마녀사냥과 인민재판으로 자유민주의 꽃인 선거를 개그 콘서트로 전락시킨다. 결론은 국가부채 늘리기다. 도덕적 해이 키우기다. 근로 의욕 꺾기다. 기업가 정신 찌부러뜨리기다.
     
      지난 12년간의 추이를 보면, 선진국 중에서 국가부채가 줄어든 나라가 딱 하나 있다.
    (여전히 세계제일 부국 미국은 물론 아니다. 미국은 1997년 3조 8148억 달러에서 2009년 7조5617억 달러로 98.2% 증가했다. OECD 평균보다는 낮다. 그런데도 국가신용이 하락하는 굴욕을 겪었다.)
    세계최고 복지 국가로 꼽히는 스웨덴이 놀랍다.
    스웨덴의 국가부채는 1997년 1860억 달러에서 2009년 1671억 달러로 줄었다. 10.2% 줄었다. 2001년에는 1097억 달러로 41.0% 줄어들기도 했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복지 자체를 줄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성장에 복지 제도를 연동시킨 것이다.
    아마 이 둘 모두일 것이다. 스웨덴은 1980년대에 금융위기를 겪고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은 적이 있다. 그대로 가다가는 복지국가는커녕 국가부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정부와 여야가 함께 국가부채 줄이기와 경제동력 키우기에 나섰던 것이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은 후 오히려 경제의 기초가 한층 허약해졌다.
    김/노/이 세 정부는 그 이전의 역대 정부를 싸잡아 욕하면서 그들이 확보한 재정건전성을 마구 훼손했다. 아무리 그래도 OECD든, IMF든, 세계은행이든, 세계경제포럼이든, 국가부채가 GDP의 30%를 겨우 넘는다며 한국의 재정건전성에 A 플러스(+)를 주니까, 마음대로 생색낼 수 있다.
    하여간 어떤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한다며 공적자금을 165조 원이나 풀어(비자금을 얼마나 챙겼을지는 상당 기간 밝히기 어려울 듯) 현대그룹같이 정부에 잘 보인 회사는 제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절대 망하지 않게 되었고, 은행은 덩치만 키웠을 뿐 여전히 국제경쟁력이 허약하기만 하다. 어떤 정부는 지역균형 달성한다며 100조 원 이상의 토지보상비를 뿌려 전국에 부동산 광풍을 일으켰고, 또 다른 정부는 세계적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경제성장의 엔진을 힘차게 돌린다며 투입이 산출보다 많은 일회성 사업을 마구 벌였다.

    복지예산은 세 정부 모두 다투어 늘렸다. 2011년 복지예산은 86조 원으로 국방비의 약 3배나 된다. 서류상 소득으로만 지불되는 게 대부분이라 눈 밝은 부자한테 역류하는 혈세가 과장하면 절반은 될 것이다. 3류 점쟁이라도 나라의 내일을 점칠 수 있을 것이다.
     (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