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부터 반값 등록금까지,봇물 터진 복지 '표(票)퓰리즘'
  • “반값 등록금이 백화점 세일처럼 대학 수강증을 50% 할인 판매한다는 말은 아니다.”

    반값 등록금 논란이 사회 전반에 몰아치고 있다. 단어만 보면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절반만 받겠다는 말인데 어떤 이가 반기지 않을 수 있을까?

    정치 전문가들은 반값 등록금 이슈의 파괴력을 ‘최고 등급’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몰아친 무상급식도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정치권을 뜨겁게 만들고 있는 반값 등록금의 ‘반값’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기준이 아니다. 명확히 말하면 대학 등록금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아니라, ‘낼 수 없는’ 계층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24일 이에 대해 “'반값 등록금'이라는 말 대신 '등록금 부담 완화'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말 많은 이 ‘반값’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나왔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꽤나 오래전 그것도 한나라당에서 나온 얘기라는게 눈길을 끈다.

  • ▲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반값 등록금 원조는 이주호 장관

    처음 대학 등록금 문제가 정치권 화두가 된 것은 2006년.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육비 부담 절반 줄이기 정책'을 내세운 것이 시초다.

    90년대 말 IMF 금융위기 이후 2006년까지 등록금과 사교육 비용이 무려 2배나 올랐다는 통계 결과에서 '예전으로의 회귀'를 콘셉트로 착안한 구상이다.

    다만 이주호 의원의 정책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 약자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엄밀하게는 반값 등록금이라 할 수 없었다.

    여기에 주가는 바닥을 치고 대통령 탄핵 등으로 어수선한 당시 사회 상황에 밀려 이주호 의원의 이 정책은 얼마간 반향을 일으킨 이후, 17대 국회에서 크게 거론되는 일 없이 묻히고 말았다.

    ◇ 무상급식에 이은 후속 정책으로 재등장

    2010년 정치권은 무상급식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면 무상급식을 당론으로 내세운 민주당 등 야권은 6·2 지방선거를 휩쓸기 시작했고, 여기서 더 나아간 것이 무상교육과 반값 등록금 정책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때도 등록금 정책을 주장한 쪽은 한나라당이었다는 것. 무상급식이란 이슈를 무상보육과 등록금 조정으로 막아보려한 셈이다.

    실제로 무상급식을 처음 도입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그에 맞선 보수세력의 정진곤 전 청와대 교육수석도 그랬고, 곽노현 서울교육감과 맞선 보수 후보들도 비슷한 공약을 내세웠다.

  • ▲ 개나리 투쟁으로 폄하되던 대학생 등록금 인하 요구가 올해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사진은 광화문 광장에서 올해 초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모습  ⓒ 자료사진
    ▲ 개나리 투쟁으로 폄하되던 대학생 등록금 인하 요구가 올해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사진은 광화문 광장에서 올해 초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모습 ⓒ 자료사진

    ◇ 복지 정책 열풍 타고 올해 재점화

    그동안 한나라당이 소위 재미 보지는 못한 등록금 정책을 이번에는 야권이 활용하기 시작했다. 무상급식에 이어 ‘복지 정책’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 터였다.

    때마침 2010년 연말 새해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서울과 경기도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점령한 지방의회가 자치단체장과 혈전을 벌였고,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기회를 잡은 민주당은 2011년 새해가 밝기가 무섭게 '3무(無)1반(半)' 정책을 발표하고, 더욱 매섭게 한나라당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그리고 '반값 등록금'이었다. '반값'이라는 단어가 비로소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시점이 바로 이때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민주당조차 당시에는 등록금에다가 차마 '무상'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못해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정책 내용을 살펴봐도 야권이 주장했던 '보편적 복지'가 아닌 저소득계층과 지방대 장학금을 늘리고 등록금의 추가적인 인상을 억제하는 한편 학자금 대출 금리를 낮추겠다는 '선별적 복지'였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세간이 기대한 '모든 대학, 등록금 절반 시대'는 민주당도 약속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 잇따른 대학생 자살 그리고 '등록금당' 창당까지

    하지만 민주당이 내세운 반값 등록금 정책도 처음부터 주목받지는 못했다. 절대 다수가 혜택의 대상인 '무상의료'나 '무상보육'보다는 공감대가 적었던 것이 사실.

  • ▲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 자료사진
    ▲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 자료사진

    하지만 2월 등록금 납부 시즌이 되어 처지를 비관한 대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면서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던 분위기는 카이스트 학생 4명이 연이어 극단의 선택을 한 사상 초유 사태 이후 대학 등록금 문제를 메인 이슈로 올려놨다.

    연일 대서특필되는 보도에 여론의 화살은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에게까지 날아갔다. 여론을 등에 업은 언론들은 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언급했던 등록금 완화 정책을 "지금이라도 실현하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이렇게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자, 통상 개강 전후로 몇 주간만 이어진다 해서 ‘개나리 투쟁’으로 불리던 대학생들의 움직임은 점점 조직적으로 변해갔다.

    이 과정에서 급속도로 번진 SNS가 큰 역할을 했다. 급기야 트위터상에는 ‘등록금당’이라는 온라인 정당이 개설됐고,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수천명의 학생이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대학생 투표율 100%되면 무상 등록금 가능하다”는 방송인 김제동의 말과 1인 시위를 펼치며 반값 등록금 공약 실현을 요구했던 배우 김여진에 쏟아진 인터넷상의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 황우여 원내대표, 총선 앞두고 결국…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등록금 전쟁의 종지부는 결국 한나라당이 찍게 됐다.

    지난 22일 집권 여당의 사령관 황우여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 추진을 공언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순탄치 않은 과정은 이미 곳곳에서 예고되고 있다.

    이미 황 원내대표가 속한 소장파와 손을 잡은 친박계 의원들은 무언의 동의를 보냈지만, 친이계는 충격에 빠졌다. 청와대까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있는 시점은 지난 것으로 보인다.

    2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황 원내대표는 강행을 선언했고, 일부 친이계 의원들도 "지휘봉 쥔 사람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다.

    호기롭게 뱉은 말인만큼, 역시 핵심은 실현 가능성이다.

    7조가 넘을 수 있다는 천문학적 예산 조달할 방안도 문제지만, 여전히 전 국민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여론을 깨우치는 일도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