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치 넘치는 글-삽화 '차명진의 의정단상' 화제
  • 한나라당 차명진의원이 이메일로 발행하는 "국회의원 차명진의 의정단상"이 화제다.
    차의원이 직접 쓰는 짧고 명료한 글과 직접 그린 재치있는 삽화가 읽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하게 만든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재미있는 몇 편을 소개한다.

    ■ 적과의 동침

  • 10년 전 이맘때 일이다.
    자원봉사센터에서 일하는 마누라가 스무 살쯤으로 보이는 청년을 데리고왔다. 지적장애인인데, 그날 하루 가족이 되기로 했단다.
    함께 공원도 가고, 식사도 잘 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 친구가 밤에 무서워서 혼자 못 잔단다. 아들도 나도 싫다고 했다.
    삐친 마누라가 자기랑 자겠다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무리 장애인이라도 그렇지, 스무 살 먹은 남자랑 단둘이 누워 자겠다고?'
    그때부터 나는 5분에 한번씩 방문을 열고 그들의 '동태'를 감시했다.
    결국 식구 모두가 거실에서 나란히 누워 자기로 타협했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도 좋겠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의미있다.

    ■ 함량미달 신문고

  • 오늘 아침 산에 갔다.
    배드민턴장 한 켠에서 라면 안주에 막걸리 회식이 있었다.
    한 잔 걸치는데 평소 잘 알던 한 형님, 실컷 민원하고 난 뒤,
    “그래야 다음에 또 뽑아주지. 안 그러면 위험해.”라고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다.
    “저는 표 구하려고 옳지 않은 일까지 하진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려면 관두세요.”라며 일어섰다.
    국회의원에게 오는 민원은 대개 ‘막장민원’이다. 민원인들도 꼭 해결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들어만 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근데 오늘은 내가 끝까지 참고 듣지 못했다.
    난 아직 수양이 덜 됐나 보다.
    내 신문고는 ‘함량미달’이다.

    ■ 말화살 빗발치는 '서바이벌게임장

  • 정책위의장 대행으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다들 최고위원회의를 ‘봉숭아학당’이라 하는데, 내가 보기엔 ‘서바이벌게임장’이다. 최후에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가 서로의 적이다. 유불리에 따라 수시로 편이 바뀐다. 각자의 무기는 말.
    공식회의 시작 전부터 서로 툭툭 던지는 말에 날이 섰다.
    “○○ 최고, 옷이 왜 그래? 다음 총선에 자신 없으니까 외모로 때우려고?”
    “△△ 최고, 오늘은 동네 민원 좀 그만하지?” “그러게. 최고위원이 무슨 도의원도 아닌데 말이야.”
    참 살벌하다.
    나한테도 비수가 날아왔다.
    “어? 차 의원, 몸싸움 잘 해서 최고위원 됐나?”
    “그냥 오늘 하루만 ‘땜빵’으로 왔습니다. 다시 제 본분으로 돌아가야죠.”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속으론 되뇐다.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한테 상처 줘가며 권력 차지는 안 할랍니다.”
    정치가 참 무섭다.

    ■ 소신 없는 국가에 사는 국민

  •  
  • 정부의 갈지(之)자 행보가 일본 원전 방사능 공포를 키우고 있다.
    한 편에선 안심하라고 한다. “태평양 쪽으로 바람이 불어 우리에겐 영향이 없다. 바람이 돌고 돌아 한반도로 다시 올 땐, 이미 방사능 농도가 떨어져 아무 피해가 없다.”
    다른 편에선 정부가 먼저 호들갑을 떤다. 환경부는 비 내리는 것에 대비해 곳곳의 정수장 뚜껑을 덮으라고 했다. 경기도에서는 학교가 휴교했다.
    오늘 당정회의에서 정부는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만에 하나를 위해서”란다.
    옛날 기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한 나머지 잠도 못자고 먹는 것도 끊었다고 한다. 순진한 백성이야 그럴 수 있겠지만, 온갖 정보를 다 갖고 있는 정부가 나서서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면 이 나라가 어찌될꼬?
    어제 우산이 평소의 7배나 팔렸단다. 소신 없는 정부 덕에 우산공장은 돈 벌었겠지만, 국민은 엄청난 ‘불안 비용’을 지불했다.

    ■ 비행기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뜻밖의 장면을 봤다.
    나와 친한 법조인 출신의 점잖은 의원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데모를 하고 있었다. 신공항 문제 때문이다.
    어제 국회 본회의장에서 만나 물었다.
    “여보시오, 당신 같은 분이 데모하면 나 같은 사람은 무엇으로 벌어먹고 살라고?”
    그가 나에게 속내를 털어놨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밀양에 신공항을 지으려면 산을 27개 깎아야 한다. 가덕도 바다에는 24톤급 덤프트럭 870만대분의 흙을 실어 날라야 한다. 비행장 만들어도 착륙하려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지역민심 때문에 어쩔 수 없더라.”
    만약 내가 그 지역구 의원이라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