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환경개선 사업비 절반 삭감 이어 집행도 ‘미적’시의회 “무상급식 부족 예산에 사용하려 하나?”
  • 서울 동작구 Y고등학교 여학생들은 올해 10년 가까이 된 화장실이 교체된다는 소식에 잔뜩 기대감에 찼었다. 지저분한 변기와 헐거운 문고리 등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들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

    하지만 여학생들의 소박한 소망은 금새 물거품이 됐다. 지난 연말 시의회까지 통과된 예산 2억원을 서울시교육청이 지급하지 않기로 한 것. 이와 함께 교육청은 Y고등학교에 약속했던 교실바닥 공사비용 3억원도 취소했다.

    서울교육청이 애당초 없는 돈이 아니라 이미 예산까지 확보된 돈을 주지 않자 Y고등학교는 황당한 모습이다. Y고 행정실 담당 직원은 “올해 초 갑자기 교육청 직원이 찾아와 ‘화장실 공사를 할 수 있는 이용 년수 기준이 강화됐다’며 지급을 거절했다”며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학생들이 계속 불편한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했다.

  • ▲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 연합뉴스
    ▲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 연합뉴스

    Y고처럼 교육청으로부터 지급받기로 했던 예산이 취소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곽노현 교육감이 이끄는 서울시교육청이 학교시설 개선사업을 대폭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려됐던 무상급식에 따른 학교 시설 개선 작업의 차질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교육환경개선 사업비에 책정된 예산은 총 690건 1207억원. 이 돈은 노후교실·화장실 등을 보수하고 냉난방 시설과 이중창문을 설치하는 등 학교 시설에 쓰인다. 그런데 올해 예산은 지난해 같은 사업에 투입된 2351억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덕분에 전면 무상급식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곽 교육감 취임 직후 예산이 절반이나 줄였지만, 서울시교육청의 무차별 예산 삭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나마 확보한 1207억원 중 948억원만 사용하고 나머지 259억원은 집행을 취소했다. “시설은 노후됐지만, 아직은 더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감액사업 내역을 살펴보면, Y고를 비롯해 34건 69억원이 전액 삭감됐고 656건에 대해서는 191억원을 규모를 줄였다. 특히 사업비가 당초 예산액 대비 50% 미만으로 감액된 사업도 27건에 이른다.

    전면 무상급식에는 수천억원을 투입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때문에 그동안 시교육청에게는 관대하던 서울시의회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회가 이미 의결한 돈을 교육감이 임의로 집행을 하지 않는 것은 예산심의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주영길 시의원은 “시의회가 심의·확정한 사업을 교육청 임의로 폐지하는 것은 의회의 예산 심의권을 침해하는 집행부의 제멋대로식 행정”이라며 “곽 교육감이 무상급식 추진에 따른 부족 예산에 충당할 생각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사업 추진에 있어 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봤야 한다”며 “아낀 예산 260억원은 추경예산에 편성해 옥상방수공사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