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후 일본인 관광객 쇼핑 실태 ‘변화’조리않고 먹을 수 있는 비상식품 찾고, 건전지·랜턴 구매남대문시장 상인들, “피난 온 사람들이 무엇을 사겠느냐?”
  • ◆ 붐비는 남대문시장. "사람은 많지만 사는 사람은 없다?" 일본지진 이후 상인들은 일본인관객들이 지갑을 닫았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건빵, 누룽지, 건전지, 빵’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대지진과 원전사태 후 일본인 관광객들이 새로이 찾고 있는 쇼핑리스트이다.

    대지진과 원전사태 후 일본인 관광객들의 쇼핑실태에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쇼핑실태에 대한 변화보다는 한국을 찾는 목적에 변화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쇼핑보다는 ‘피난’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3일 오후 서울역 M마트. 이곳은 평소 일본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쇼핑 명소 중 하나다. 입구에 들어서자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상품목록이 눈에 들어 왔다. ‘Foreigners Best 10'이라 적힌 상품목록에는 김치와 김, 라면 등 다양한 상품들이 이미지와 함께 표시돼 있다. 특히 각 상품 이미지 아래 설명이 모두 일본어로 돼 있어 일본인들이 이들 상품을 많이 구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죽, 스프, 건빵 등 ‘비상식품’ 찾아…건전지, 렌턴도 목록 추가  


    1위는 포장김치. 김과 라면이 그 뒤를 이었다. 초코파이와 유자차, 막걸리 등도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상품들이다. 매장안으로 들어서 생수판매대로 갔다.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일부 언론에서 이른바 ‘생수사재기’를 보도했기 때문이다.

    매장 점원에게 일본인 관광객들이 생수를 많이 사가는지 물어봤다.

    “생수사재기는 없어요. 하지만 서너 병씩 사가는 분들은 있어요”

    생수만이 아니라 다른 품목도 이른바 사재기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쇼핑목록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는 점이다.

    한 점원은 전에는 찾지 않던 즉석 섭취식품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조리하지 않고도 바로 먹을 수 있는 죽과 스프 등의 판매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누룽지와 건빵, 양산빵 등 전에는 일본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식품류의 판매가 늘어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들 식품 대부분은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조리없이도 먹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식품외에도 ‘건전지’와 같은 예상치 못한 상품을 찾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는 일본의 ‘계획정전’ 시행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일본인들의 건전지 구매는 다른 곳에서도 확인됐다. 명동에 있는 초저가생활용품 전문점 D사에서도 일본 지진 후 일본인 관광객들의 건전지와 렌턴 구매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 “개시도 못한다”…대부분 구경만 하는 ‘피난 관광’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의 관광목적이 바뀐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일본인들이 구경만 하지 쇼핑은 하지 않는다”면서 “불안하니까 일단 우리나라에 들어오긴 했지만 쇼핑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근처 다른 상인도 같은 의견을 보였다. “주변을 봐라. 일본인들이 쇼핑백을 들고 있는 사람이 없지 않느냐?”면서 “오고 가며 구경만 한다”고 한숨을 내 쉬었다. 방사능 확산과 여진 등으로 인한 불안심리로 잠시 일본을 떠난 것일 뿐 과거처럼 쇼핑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본인 관광객 수가 급감했다는 말도 이어졌다. 실제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한결같이 일본인관광객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과 인삼, 유자차 등 평소 일본인들이 즐겨찾는 식품을 주로 판매하는 한 상인은 “대지진 이후 일본인 관광객이 80% 이상 줄었다”면서 “개시도 못하고 들어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명동은 여전한 쇼핑 천국, 피해지역 이외 관광객 전과 다름없어


    그러나 명동지역의 분위기는 이와 달랐다. 일본인 관광객 수가 줄어들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상품판매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명동지역에서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인삼, 김, 미역 등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지진이후 절반 수준으로 일본인 관광객 수가 줄어들긴 했다”면서도 “판매상품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구매의욕이 전만 못하다는 의견은 있었다. 또 다른 상인은 “예전처럼 호객행위를 해도 가게 안으로 쉽게 발을 들여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동역 근처 P호텔 관계자는 “지진발생 직후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는 등 관광객수가 크게 줄어 들었지만, 지금은 거의 정상수준을 회복했다”며 “일본인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피부마사지와 같은 현재 쇼핑모습은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S호텔 관계자도 “지금은 거의 정상수준을 회복했다. 신규예약도 정상대로 진행 중”이라며 “쇼핑실태에도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인들은 (지진을) 지역문제로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방사능 확산, 여진(餘震) 공포가 일본인 쇼핑패턴 바꿔


    서울역부터 명동까지 일본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쇼핑명소들의 반응을 종합하자면, 일본인들의 쇼핑실태에는 분명 변화가 감지된다. 건빵과 누룽지, 죽과 스프 등은 비상식품으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식품들이라는 점에서 볼 때,방사능 확산과 계속된 여진(餘震)으로 인한 공포가 일본인들의 쇼핑패턴을 바꿔 놓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건전지와 랜턴 구매도 같은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은 여전히 전과 같이 쇼핑을 즐기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한 일본 전문 여행사 관계자는 “지진발생 후 동북부 관광객은 거의 없다”면서도 “지진피해가 거의 없는 나고야 등 다른 지역의 관광예약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피난관광’ 실체 분명친 않지만…“지갑은 안 여는 것은 분명해”


    남대문과 명동 상인들이 말하는 '피난관광'에 대해 한 일본 전문 여행사 관계자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실제 구매의욕이 줄긴 했다”면서 “상품구매가 줄어 들다 보니 상인들이 관광객 수가 줄어들었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구매의욕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 “(일본인들이) 불안해하는 건 맞다. 그러다보니 예전처럼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 것 같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