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다고 다 좋은 기업 아니다. 내실 기해야선진국, 시선 세계일류에 두고 부단히 노력해야
  • 6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세계 공업강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 국내외에서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인가 아닌가를 놓고 상반된 평가가 많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재)한국선진화포럼 유장희 정책위원장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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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화 홍보대사(이하 <선>) 최근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 열 개 남짓의 한국기업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는 선진국들에 비해 부족한 숫자입니다. 이러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유장희 정책위원장(이하 <유>) 포춘이나 WSJ 같은 저널에서 자본이나 매출액규모를 기준으로 발표하는 기업 순위들은 어느 기업의 규모가 큰지, 큰 기업들이 어느 국가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차원이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규모가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1970년대 초, 영국의 경제학자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규모가 작을지라도 고유의 기술을 통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 보다 바람직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규모의 비경제성이 발생하게 되어 있고, 조직이 관료화되고, 비대해진 조직을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에 작지만 알찬 기업이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는 빌게이츠가 설립한 Microsoft사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는데요. 빌게이츠의 Microsoft사는 차고에서 조그만 규모로 시작했습니다. 다만 고유의 기술과 노하우를 통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점차 큰 규모로 나아가게 된 것 뿐이지요. 규모는 시장에 좋은 상품을 출시하여 승리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물일 뿐, 성공의 결과가 “큰 것”이므로 큰 규모가 좋지 않느냐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큰 기업이 많은 미국을 보세요. 얼마나 많은 대기업이 최근에 무너졌습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큰 기업이 얼마 없으니 선진국으로 분류되기는 틀렸지 않느냐는 식의 생각을 흔히들 하곤 합니다만, 작고 내실있는 기업을 많이 육성하는 국가 역시도 충분히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크기는 작지만 알찬 기업들을 육성하여 경제발전을 일구어 낸 대만의 사례에서도 목도할 수 있습니다.

    크다고 다 좋은 기업 아니야, 기업의 내실을 기해야

    <선> 그렇다면 보다 내실있는 기업이 되기 위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야 할 가장 큰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유> 내실있고 알찬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부단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한 먼저 앞서나가고 있는 세계의 유수 기업들을 벤치마킹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만의 고유한 기술을 개발해내야 합니다. 외국에서는 우리 국민의 높은 지식수준을 두고 두뇌강국이라고 평가하곤 하는데요. 이러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조금 더 노력한다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재래식산업의 육성을 통한 발전에 매여, 신성장동력의 창출에 총력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향후 정부차원에서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고 각종 규제의 완화를 통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창달되도록 장려한다면, 기업들의 자체적인 노력을 더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 대한 투자로 성장동력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끝에 ‘파이넥스 공법’을 발명해 낸 포스코의 경우가 그 단적인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선> 최근 한 유통기업의 "통큰치킨" 출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은 적이 있습니다. 이는 아직 우리가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에 미숙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선진국이었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갔을까요? 

    <유> 선진국의 경우, 대기업이 시장의 진입에 앞서, 공정한 시장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기업 내부에서는 자체적인 토론과 검토의 과정을 거치고, 시장조사를 통해 대기업뿐만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소기업들이 상생할 수 있는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한편 소기업 쪽에서도 시장에 진입하는 대기업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냅니다. 기존 소기업간의 연계망을 형성하여 나름의 생존활로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기업과 소기업 양측의 노력이 모두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대기업의 경우 상생의 미덕을 추구함에 있어 소홀하고, 소기업 측 역시 자체적인 연계망 형성 등을 통해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대기업들도 자신들의 자세를 가다듬고, 소기업들은 경쟁력 제고에 박차를 가해 상호간의 긍정적 효과를 이뤄내야 할 시점이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실제로 중소기업 중앙회 등지에서는 ‘코사 마트’를 제안, 기존 소상인들 간의 연계를 도모하기도 했는데요. 이와 같은 노력이 보다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유사한 노력들을 이미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도 국제무대에서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원조비중을 확대해 나가야

    <선> 한국의 GNI 대비 ODA 비중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기존 선진국들의 역할모델과 한국의 현 상태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요. 그럼에도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요?

    <유> 이 문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당연히 해결해야할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까지 GNI 대비 ODA를 0.25%까지 점진적으로 올리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국가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급작스럽게 ODA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이러한 점진적 변화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선진국을 정의하는데 특정한 잣대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국가가 스스로를 선진국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선진국임이라 자평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원조 등이 제공되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의 경우 OECD 구성원의 평균만큼이라도 ODA를 제공하자는 것이고요. 빨리 우리나라가 이 수준에 이르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지원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한 경제적 능력이 전제가 되어야겠지요. 성장과 분배를 두고 많은 논의가 오가곤 하는데, 성장도 부지런히 해야 하겠고, 그 가운데서 분배를 할 때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의 분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봐요. 그게 가능해 질 때에 우리나라도 스스로를 선진국이라 선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문제 뿐 아니라 국민들의 의식이 잘 배양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하기엔 지도층들의 의식이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닐까요?

    <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은 선진국이 되기 위한 사회, 도덕, 윤리적 전제조건이지요. 우리사회는 아직도 "있는 자"들의 배려, 소위 말하는 "긍휼"의 마인드가 부족함을 자인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지도층에서도 나름대로의 고심을 하곤 합니다만, 이는 법 등을 통해 타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오로지 솔선수범, 이 네 글자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겁니다.

    선진국에서는 전쟁이 발발했을 때마다 사회 지도층의 자녀들이 스스로 자원하여 전방에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또 이스라엘 같은 경우는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이 있을 때마다 지도층들이 일선에 나가고, 심지어 외국에 나가있던 이스라엘 국민들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너도나도 귀국하는 모습을 보이지요. 이처럼 지도자들, 가진 자들, 지식인들이 솔선수범 할 때 우리도 비로소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 IMO가 기업부문, 정부 행정부문 등을 평가한 국가경쟁력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말레이시아에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었는데요. 이를 통해 보자면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유> 현재 우리나라를 살펴보면 기업의 경쟁력 부문에서는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행정부문에서는 늘 점수가 나오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에요. 질문에서 나온 말레이시아의 경우는 마하티르 수상의 지도하에 깨끗한 정부, 헌신하는 공무원윤리를 확립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이루어 냈습니다. 또 싱가포르는 리콴유의 지도하에 깨끗하고,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정부를 만든다는 확고부동한 철학을 가지고 일관된 국정 운영을 보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그러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요. 일각에서는 동남아에 비해 낮은 우리나라 공무원의 월급수준이 문제가 된다고도 하는데, 그에 앞서 일단 공직을 택한 사람은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적인 대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와 같은 의식의 부재가 낮은 정부부문의 경쟁력 순위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먼저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하여 철두철미한 의식 하에 정부의 효율적 운영이 더해진다면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선을 세계 일류수준에 두고 부단히 노력해야

    <선> 앞으로도 한국을 선진국에 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젊은이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유> 한국의 젊은 세대는 지금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에서 일류라고 생각되는 라이벌을 찾아 끊임없이 경쟁하고, 승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경쟁의 상대를 국내에 국한시키면 안 된다고 봐요. 요즘 어떤 엄마가 자기 딸이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하는데, 기준을 김연아에 맞추라고 조언해 주었답니다. LPGA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신지애 선수의 아버지도, 신지애 선수에게 수준을 폴라 크리머에 맞추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합니다.

    홍보대사와 젊은이들이 목표를 설정할 때에는 이와 같이 라이벌을 세계 일류에서 찾아야 하고, 충분히 그럴 만한 역량이 있다고 생각해요. 세계일류를 상대로 경쟁해, 승리해나가는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선진화 홍보대사 김송이, 류혜라, 민병의, 윤지연, 장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