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⑥  
     
     「중국으로 가시지요.」
    박용만이 불쑥 말했으므로 나는 머리를 들었다.

    나는 지금 네브라스카 헤이스팅스에 와 있다. 박용만이 창설한 대한소년병학교의 졸업식에 참석한 것이다.
    비록 졸업생은 십여명 뿐이었지만 박용만의 의지와 애국심은 눈물겹다.

    졸업식을 마친 우리 둘은 박용만의 숙소 거실에서 마주보며 앉아있다. 내가 입을 다물고만 있었으므로 박용만이 말을 잇는다.
    「미국이 나서주지 못할 입장이란 것은 형님이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윌슨하고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빗대고 한 말이다.

    1912년 8월 하순쯤 되었다.

    머리를 든 내가 박용만을 보았다.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저도 이곳을 정리하고 중국으로 떠날 겁니다.」
    「중국 어디?」
    「상해로 가겠습니다.」

    그러나 박용만의 말끝이 흐려져 있다. 그 때 박용만은 나보다 6살 아래였으니 서른 둘이다.

    박용만의 시선을 받은 내가 머리를 저었다.
    「난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 올해 12월의 미국대통령 선거나 끝나고 내 거취를 결정해야겠네.」
    「윌슨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조선독립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박용만이 힐난하듯 물었지만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외교의 중요함을 모르는 박용만이 아니다. 박용만은 그동안 네브라스카 주립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았다.

    그때 박용만이 말을 이었다.
    「하와이에서도 절 오라고 합니다.」
    「하와이?」
    내가 묻자 박용만이 쓴웃음을 짓는다.
    「예. 그곳에서 같이 일을 하자는 동포가 있어서요.」

    박용만이 망설이고 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상해로 간다고는 했지만 막연한 것이다.
    각지에 독립군이 흩어져 있고 상해와 블라디보스토크에 요인들이 망명해 있었지만 아직 조직이 결성되지 않았다.

    상해에는 대종교(大倧敎)의 신규식(申圭植)이 조직한 동제사(同濟社)가 유일했다.
    대종교란 단군교가 일제의 탄압을 받고 이름을 바꾼 것으로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의 3신(三神)을 섬기는 국수주의 성향이지만 강력한 애국단체로 반일 활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디로 간들 자네의 애국심이 변하겠는가? 소식이나 자주 전해주게.」
    「형님, 수중에 돈이 있으십니까?」
    하고 박용만이 물었으므로 나는 활짝 웃었다.
    「내 앞에 달라가 산처럼 쌓여있다네.」
    내가 손으로 끌어 모으는 시늉을 했다.

    「교회가 있는 한 내 수중에는 돈이 마르지 않을 걸세.」
    「여기 35불이 있습니다.」
    박용만이 탁자 밑에서 손수건으로 싼 돈을 꺼내 내 앞에 놓으며 말한다.
    「제가 네브라스카 벽지에 있지만 형님 소문을 들었습니다. 교회의 강연이 줄어들었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했지만 곧 나는 외면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교회 두 곳에서 강연이 취소되었다. 전에는 감리교 교단의 지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인연이 떼어진 상태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박용만이 눈으로 손수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군자금을 모은 것이 조금 남아서 드리는 겁니다. 여비로 쓰시지요.」

    나는 손수건을 쥐었다. 마침 수중에는 3달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방랑자가 무슨 돈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