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8에 그이를 회상하며  

     코드 네임 ‘오퍼레이션 크로마이트(Operation Chromite). 1950년 9월 15일에서 17일 사이에 있었던 세계 전쟁사상 위대한 거봉인 인천상륙작전의 작전명이다. 총지휘관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을 세운 날이라면 1950년 9월 15일은 대한민국을 기사회생 시킨 날이다. 그로부터 13일 후, 서울 중앙청 돔 위는 다시 ’휘날리는 태극기‘였다. 인천 상륙작전 구상은 6.25 남침이 자행 된지 4일후 이미, 일선을 시찰한 맥아더 원수의 뇌리를 전광석화처럼 스쳐갔다.  

     9.28 수복 60주년을 맞이하면서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맥아더 원수의 촌철살인(寸鐵殺人) 같은 작전회의 발언이다. 다른 장군들이 작전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성공한다. 아무도 이렇게 섣부른(brash) 짓을 할 줄은 모를 터이니까” 가히 입신(入神)의 경지-천재성과 용맹을 겸한 ‘슈퍼 외계인적‘ 발상이라고나 할까. 

     상륙작전의 최전방 지휘관은 아더 듀이 스트러블(Aurther Dewy Struble) 장군. 2차 대전 때 필리핀 탈환전의 시발인 레이테 상륙작전, 그리고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한 베테랑이다. ‘오퍼레이션 크로마이트’의 통제관은 에드워드 알몬드(Edward Almond) 중장. 그는 가능하면 남침 꼭 3개월째가 되는 9월 25일에 서울을 수복하려 했다. 그러나 인천 상륙이 이틀만에 성공한 데 비해 서울 수복까지는 11일이 걸렸다. 9월 26일, 지금의 을지로 입구 롯데 백화점 자리에 있던 당시 서울 최고의 빌딩 반도 호텔을 장악하고도 이틀이 더 지나고서야 서울 전역을 수복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김정일과 그의 남쪽 꼬붕들이 왜 그토록 혈안이 돼서 맥아더 동상을 허물어뜨리려 했는지 그 까닭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럴수록 왜 우리 참전(參戰) 세대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저들의 그런 기도를 온몸으로 막았는지 그 충정도 모를 수가 없다. 맥아더 원수의 인천 상륙작전이 없었다면 요즘 세대가 떠드는, 오직 대한민국 헌법체제만이 보장하는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었을 것이기에. 

     인천 송도에는 지금 거대한 국제도시가 올라가고 있다. 영종에는 세계 유수의 국제공항이 들어섰다. 경인(京仁) 가도와 서울 도심의 광화문, 경복궁 앞에는 삶의 맥박이 초(秒) 단위로 뛰고 있다. 그러나 그곳들은 60년 전 그날엔 수많은 국군들과 동맹국 군인들이 피를 흘린 치열한 전투현장이었다. 그 희생을 오늘의 세대는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가?

      맥아더 원수의 웨스트 포인트 고별연설의 한 구절이 새삼 귓가에 쟁쟁하다. “전쟁에선 승리의 대치물은 없습니다. 전쟁에서 지면 나라가 없어집니다.” 전쟁 안 나려면 김정일에게 돈 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오늘의 세태가 곰곰 되새길 대목이다. 

    <류근일 /본사고문, 언론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