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임 국무총리로 대법관 출신인 김황식 감사원장과  조무제 전 대법관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김 감사원장은 호남 출신에 감사원장으로서 행정경험도 있다는 점이, 조 전 대법관은 '청렴법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시야 좁은 대법관 출신 총리는 곤란

     

    하지만 '대법관' 출신 국무총리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법관은 기본적으로 '독립하여 판단하는' 직업이다. 법관에게는 상관도, 부하도, 동료도 없다. 합의부의 경우 배석판사들이 있지만, 그들도 기본적으로 독립하여 판단하는 판사다. 법관은 원고와 피고가 내놓은 서면이나, 재판정에서의 진술에 의지해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누구도 그의 의논상대가 될 수 없다.
    이 점에서 판사는 같은 법조인이면서도 청탁을 불문하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 변호사나, 상명하복의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검사와 다르다. 판사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편협하기 쉽다는 얘기다.
    대법관이란 그런 세상 보는 눈이 좁은 외톨박이 생활을 30년 가까이 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 사람이 우리 사회의 복잡다난한 문제를 다루고,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하는 국무총리직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헌법 구조상 사실상 청와대가 모든 것을 하고, 국무총리는 사실상 바지저고리인 것은 사실이다. 대독총리, 방탄총리, 의전총리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총리 자신이 정치적 감각이 있고, 대통령이 그에게 힘을 실어 준다면, 나름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이해찬, 한명숙 총리가 그랬다.
    경제부총리가 폐지된 상황에서 경제를 아는 사람을 총리에 앉힌다면, 그가 경제사령탑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운용하기에 따라서는 국무총리직을 선용하고,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임기 절반을 넘긴 이명박 대통령은 차기 대권구도 설정이나 남북관계 등 신경쓸 일이 많을 것이다. 총리가 어느 분야에서든 대통령의 짐을 덜어 줄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되풀이해서 하는 얘기지만, 법관, 그것도 평생 판사실에 앉아 법조문만 들여다 본 대법관 출신 총리가 정치적-행정적으로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판사로서의 좁은 시각으로 정치와 행정을 해석하려 할 경우, 대통령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김영삼 정권 시절 이회창 총리가 그랬다. 그는 법조문을 기계적으로 해석해 총리로서의 권한 행사를 요구하다가 청와대와 갈등 끝에 총리직을 내놓고 말았다. 당시 언론은 그를 두고 '대쪽총리' 운운했지만, 그 '대쪽총리'는 대통령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법관 출신 총리로 김대중 정권 말기에 김석수 총리도 있지만, 그는 선거관리내각의 수장에 불과했다. 속된 말로 공정선거관리를 보여주기 위한 얼굴마담이었다는 얘기다.

     

    '청문회 통과할 수 있는 총리'만 찾는 소심함 노출

     

    대법관 총리론에 대해 걱정되는 또다른 이유는 거기서 이명박 정부의 소심함과 비겁함, 얕은 장사속이 읽히기 때문이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 낙마에 충격을 받고, 무엇보다도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총리'를 급구(急求)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호남총리'거나 '청렴총리'면 야당의 반발을 적당히 무마시키면서 청문회 통과가 가능하리라는 생각....
    하지만 그건 얼마나 비겁하고 수세적인 생각인가?


    아무리 힘 없는 자리라 해도 국민들은 국무총리나 장관 등 인사를 통해 대통령이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하는 의지를 읽고 싶어한다. 하기에 따라서는 국무총리 인사를 통해 그 정도는 보여줄 수 있다. 노무현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만사 제쳐놓고 '청문회 통과할 수 있는 국무총리'만 찾아 헤매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정말 안타깝다. 연민의 정마저 느낄 정도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소심하고 비겁한 대통령을 두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이명박 대통령은 입버릇처럼 "임기 마지막날까지 할 일은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까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총리를 택해야 마땅하다. 세상을 아는 총리, 행정을 하는 총리, 그래서 대통령의 무거운 어깨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총리를 택해야 한다. 그게 대통령을 위해서도 좋다.

    그런 점에서 '대법관 출신 총리'는 아니올씨다다. 대통령의 재고를 강력히 촉구한다. <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