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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해도 괜찮아, 끝까지 살아 남아"

입력 2010-07-26 14:17 | 수정 2010-07-26 15:40

▲ 영화 '골든 슬럼버'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 뉴데일리

거대한 적에 맞서 싸우는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흙탕물에 뒹굴며 비굴하게 도망쳐도 좋으니 꼭 살아남으라고 이야기한 영화는 없었다. 지금 시대에 우리가 ‘골든 슬럼버’를 이야기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릴러 형식을 통해 인간 신뢰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 ‘골든 슬럼버’의 나카무라 요시히로(中村義洋, 40) 감독을 만나 그 해답을 들어봤다.

▲ 영화 '골든 슬럼버' 포스터 ⓒ 뉴데일리

"왜?" 라는 물음이 필요 없는 현실. 살아 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도망' 뿐.

공권력에 의한 언론의 날조 등 정치적 함의를 장치로 한 영화 ‘골든 슬럼버’는 7명의 특별한 친구들이 완성시키는 무고한 총리 암살범의 완벽한 도주극을 그린 영화다. 영화의 초반, 암살당하는 일본 총리는 ‘반미’ 성향을 가진 인물. 배경이 되는 센다이 곳곳 폐쇄회로에는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거대한 적 ‘정부’가 있다.

암살범으로 지목된 아오야기는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오스월드(케네디 암살범)’다. 총리 암살극이 펼쳐진 뒤 그가 암살현장에 있었음을 증언하는 목격자, R/C헬기를 조종하고 있는 증거 영상 등이 차례로 공개되고, 그의 모든 과거는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증거가 된다. 왜, 그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일까. 하지만, 그러한 의문을 해결할 방법도 여유도 없다. 체포가 아닌 그저 사살을 목적으로 다가오는 경찰을 피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가장 소중히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이죠. 살아있다는 것의 중요성.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 아무것도 생각치 말고,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살아남아 달라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중심 메시지 입니다.”

이러한 그의 의도에 맞춰 영화의 결말 또한 기존에 비슷한 주제로 만들어진 작품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거대 권력에 맞서 싸우는 개인이 결국 음모를 밝혀내고 승리하는 그간의 영화 플롯을 철저히 깨고, ‘골든 슬럼버’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일본 개봉 당시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개운하고 통쾌하다는 반응이 있던 반면, 처절한 감정을 느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에대해 나카무라 감독은 반대로 결말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고 말한다. 진상을 밝히고 결국 주인공이 승리하는 것을 바라는 이들에게 그래서 결국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말이다. 나카무라 감독은 바로 지금의 결말이 진정한 ‘승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영화 '골든 슬럼버' ⓒ 뉴데일리

이사카 코타로와의 세 번째 인연, 원작의 맛을 교묘히 풀어내다

영화 ‘골든 슬럼버’는 ‘사신 치바’, ‘마왕’으로 이미 국내에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인기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결정체적 작품이자 제 5회 일본서점대상과 제 21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이사카 작가와 나카무라 감독의 만남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와 ‘피쉬스토리’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총 여덟 작품이 영화화 된 이사카 작가의 절반 가까이가 그의 손에 의해 영화화 됐다.

나카무라 감독 특유의 유쾌한 터치가 가미된 ‘골든 슬럼버’는 원작의 맛을 교묘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영화의 설정 대부분은 원작 그대로 가져왔다. 최대한 원작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놓는 것이 나카무라 감독의 스타일이다.

“원작을 영화화 할 때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100%를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작품 밖에 만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 자체가 가장 완벽한 상태이기 때문이죠.”

▲ 영화 '골든 슬럼버'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 뉴데일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카무라 감독의 색이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만의 유머다. 실제, 유머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그는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보여주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주인공의 아버지가 인터뷰를 하면서 아들에게 ‘빨리 도망쳐’라고 이야기 하죠. 그때 주인공은 감동을 받고, 차의 뒷좌석에 감금된 경찰은 눈물을 보입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모습에서 웃음을 터뜨리죠. 그렇게 까지 계산된 설정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돼요.” 관객들은 어김없이 그가 철저한 계산으로 만들어 낸 웃음의 덫에 걸려들고 만다.

영화 ‘골든 슬럼버’에서 가장 눈에 띈 캐릭터는 단연 연쇄살인범이 아니였나는 기자의 말에 그는 웃어 보이며 “원작을 읽으며 이 아이는 정말 뭔가 싶었다”고 말한다. 범죄자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그 아이러니함이 주는 웃음의 폭이 상당히 크다.

“제가 납득한 건 그런 존재 밖에 그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예요. 대신 누군가를 거침없이 죽이고, 도망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여야만 주인공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하죠. 저도 참 좋아하는 배우지만, 원작자가 특히 너무 좋아해서 소설 집필 당시 부터 그를 염두해 두고 작품을 만들었던 캐릭터 였어요.” 영화 캐스팅에 대한 부분을 모두 감독에게 믿고 맡기는 이사카 작가지만, 연쇄살인범 만큼은 하마다 군이 됐으면 좋겠다며 그가 결정될 때 까지 매일매일 나카무라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고 한다.

 

"희망이 생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나카무라 감독은 한국 관객들에게 대해 “영화를 만들면서 이 부분에서 웃어줬으면이라고 생각한 부분에서 제대로 웃음을 보여준다”고 유쾌한 경험을 털어놨다. 이전 홍콩 영화제 방문시 관객들이 지나치게 적극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반면 일본 관객들의 경우 너무 조용하고 수동적인데 반해 한국은 그 두 나라 사이에 딱 적당한 정도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만큼, 한국 관객들의 웃음 코드에 제대로 들어맞는 영화이기도 하다.

한국 배우 중에는 송강호의 얼굴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얼굴에 각이 진듯한 느낌을 좋아한다는 나카무라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의 아버지가 비슷한 얼굴 형을 갖고 있지만, 일본에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고 덧붙였다.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에게 ‘괴물’이라는 작품은 역시 특별했던 것일까. 그는 ‘괴물’에 대해 “거대한 적과 개인이 싸운다는 점에서 ‘골든 슬럼버’와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다”며 “가족이라는 설정을 통해 만들어진 캐릭터들의 매력이 상당히 인상깊었다.”고 말한다.

 

▲ 제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골든 슬럼버'의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우)과 김영진 평론가(좌) ⓒ 뉴데일리

대학시절부터 자체제작으로 영화연구회라는 서클에서 조감독을 하다 영화 ‘퀴리’를 시작으로 각본가로의 인생을 걸었던 그. 나카무라 감독은 5년간의 시간 동안 자신은 각본가에 어울리지 않나 라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감독의 오퍼만 들어와 지금까지 감독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웃는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기준은 없어요. 다만, 희망이 생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돌아갈 때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영화를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영화 ‘골든 슬럼버’는 일본에서 300관 이상에서 개봉했다. 텔레비전 방송국을 제작에서 배제하고 만든 영화로는 이례적인 숫자였다. 또한, 내달 6일 대규모로 국내에 공개 될 예정이다. ‘골든 슬럼버’의 국내 개봉 규모를 듣고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다는 그는 “왜? 왜 이렇게 까지?”라며 배급사 관계자에게 물음을 던져 웃음을 전하기도 했다.

‘골든 슬럼버(Goden Slumber)’란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 ‘Abbey Road’에 수록된 곡으로 ‘황금의 선잠’ 혹은 ‘황금빛 졸음’이란 뜻이다. 영화 속에서는 온 세상이 추격하는 한 남자의 도주극이 완성되는 그때, 그 절정의 피곤함을 위로할 달콤한 졸음을 뜻한다. 내달 국내 관객들과 만날 ‘골든 슬럼버’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새로운 위로가 되어줄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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