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29)

     내가 저술한 「독립정신」은 수감 5년이 지난 1904년 2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6월 말까지 4개월여 만에 탈고했다. 제국신문에 기고했던 논설들을 활용했기 때문에 빨리 완성 시킬 수가 있었다.

    「독립정신」을 쓰게 된 동기는 일본육사 출신으로 혁명일심회(革命一心會)의 핵심이었던 유길준(兪吉濬)의 동생 유성준(兪星濬)이 권했기 때문이다.

    유성준은 계몽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교육, 계몽시키기 위한 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나와 생각이 같았다. 따라서 「독립정신」의 내용은 백성들에게 민족주의의 원칙을 가르치고 독립정신을 촉발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절대주의(絶對主義)는 민족 독립에 치명적인 해가 되며 민족의 멸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절대군주제(絶對君主制) 대신 입헌주의(立憲主義)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게다가 일본과 러시아가 각축을 벌이며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에 민중들이 눈을 뜨게 하고, 강국에 먹히지 않고 강국들에 배우며 강국 틈에서 당당히 살아가는 민중으로 만들고 싶은 내 열망을 고스란히 담아 보려 애썼다.

    러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정치범들이 대거 사면되어 출옥했지만 나는 남아서 독립정신을 완성시켰다. 내가 서적실에서 완성된 원고를 정리하고 있을 때 감옥서 부서장 이중진(李重鎭)이 들어와 앞에 앉았다.

    이중진은 내가 기독교로 개종시킨 사람 중의 한명이다.
    나는 옥중에서 40여명을 기독교로 개종 시켰는데 이들은 훗날 한국 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길 것이었다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이원긍, 이상재, 유성준, 김정식, 이승인, 홍재기 한국선 등 대부분 양반출신 전직 고관이다. 그 당시에 양반 중에서 개신교를 수용한 인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중진이 원고 한 장을 집어 들고 읽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우남, 조금 전에 궁내부 박모(某)라는 인사가 일본 공사관 직원하고 다녀갔소.」

    놀란 내 시선을 받은 이중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우남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묻습디다. 특히 면회를 온 인사들 기록을 베껴갔고 우남의 행동을 물었소.」
    「제가 어떤 성향인지는 신문 논설에 다 퍼뜨렸으니 구태여 물을 필요도 없을텐데요.」

    따라 웃은 내가 말했더니 이중진은 정색했다.
    「이제 정치범들이 다 풀려난 상황인데 우남 혼자만 남아계시면 되겠소?」

    이중진이 아직도 손에 들고 있던 독립정신 원고 한 장을 들어 보이며 말을 잇는다.
    「이 책을 출판하여 민중을 계몽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남은 이곳에서 나가셔야 하오.」
    「고맙긴 합니다만.」
    「그래서 나는 서장님하고 상의를 해서 그자들에게 면회자 기록을 거짓으로 만들어 보여 주었습니다. 만민공동회나 독립협회에 몸 담았던 인사들의 기록은 다 빼었소.」

    말문이 막힌 내가 시선을 내렸고 이중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자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우남 동태를 살피는 것을 보면 석방 시키라는 압력을 받는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우남에게 이 말씀을 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내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더니 이중진이 생각났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내 동생이 우남을 지극히 따르니 출옥하시거든 부디 옆에 두고 심부름이라도 시켜 주십시오.」
    이중진의 동생 이중혁 또한 개신교로 개종한 착실한 청년이다.

    내가 정색하고 대답했다.
    「출옥한다면 꼭 같이 행동 하겠습니다. 제가 오히려 배워야 하겠지요.」

    이중진이 서적실을 나갔을 때 내 입에서 저절로 긴 숨이 뱉아졌다.
    어느덧 감옥소에 갇힌 지 만 6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바깥세상은 엄청나게 변해가고 있다.
    일본은 이제 러시아를 밀어 붙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