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24)

     감옥서의 학당은 1902년 10월에 개설되었는데 서장 김영선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김영선에게 진정서를 올려 학당 개설을 부탁한 것은 말보다도 글로 써 올리는 것이 예의일 것이며 증거로도 남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영선은 쾌히 응낙했고 동료 옥리들로부터 성금을 걷어 교실과 운영에 필요한 자재를 지원했다.

    학당에서는 처음에 감옥서 안의 아이들 수십 명에게 한글과 동국역사, 명심보감 등을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영어, 일어, 산수, 문법, 세계지리까지 과목을 넓혔다. 옥중 학당의 교수로는 신흥우(申興雨)와 양의종(梁宜宗)이 나를 도왔는데 주로 어른반을 맡았다.

    「형님은 잠시도 쉬지 않으십니다.」
    서적실에서 교재를 챙기는 나에게 신흥우가 다가오며 말했다.

    신흥우는 내가 배재학당에 입학하도록 권한 내 친구 신긍우의 동생이다.
    신흥우도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작년인 1901년 11월, 박영효의 복권 운동에 가담했다가 잡혀 수감되었다. 

    내 앞에 단정히 앉은 신흥우가 말을 이었다.
    「박대감은 곧 귀국 하신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박대감이 오시면 이제는 민중의 지지를 받으실 것입니다.」
    내가 가만있었더니 신흥우는 무릎걸음으로 가깝게 앉는다. 박대감은 박영효다.

    「형님, 박대감께서 집권하시면 우리 조선도 일본처럼 발전되지 않겠습니까?」
    신흥우는 박영효의 신봉자인 것이다.
    나 또한 박영효를 대신임용자 명단에 넣었다가 중추원 의관직을 박탈당하고 역적의 동류로 몰린 터라 신흥우는 동지 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길게 숨을 뱉은 내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말했다.
    「박대감이 귀국해도 조선 정세는 변하지 않아. 오히려 일본의 지배가 당겨질지 모르네.」
    「아니, 왜 그렇습니까?」

    신흥우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박대감께서 일본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개화파가 박대감을 밀면 일본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나는 신흥우의 순수성을 아꼈다.
    박영효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그만큼 순수했기 때문이리라.
    나 또한 처음에는 박영효와 김옥균이 위대한 선각자로 보였으니까.

    그러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습격했던 수구파의 원흉, 황제의 수족인 홍종우를 만나고 나서 내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홍종우 또한 나름대로 조선국에 대한 애국자였던 것이다.

    신흥우의 시선을 받은 내가 말을 이었다.
    「민중을 더 계몽 시켜야 돼. 그래서 개혁에 대한 지지를 더 끌어 모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야. 지금은 박대감이 오신다고 해도 안돼.」
    「형님은 마음이 변하셨습니다.」

    신흥우가 원망하듯 말했으므로 나는 머리를 저었다.
    「난 변한 것이 없네. 꺾인 것도 없고.」
    정색한 내가 똑바로 신흥우를 보았다.
    「민중을 계몽시키기 위해서 나는 더 배우고 더 노력을 할테야.」

    그러자 신흥우가 외면했다.
    내가 고집쟁이로 보였을 것이다. 내가 포용성이 부족하다고 생각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중의 힘없이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날 밤 나는 창살 밖으로 보이는 달을 향한 채 앉아 상념에 젖었다.
    대한제국의 미래가 꼭 감옥에 갇힌 내 신세 같았기 때문이다.
    감옥 안에서 기를 쓰고 있었지만 희망의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옆쪽에는 신흥우가 깊게 잠들어 있다.
    나는 다시 달을 올려다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열심히 살리라.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면서 민중의 잠을 깨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