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21)

     감옥서 서장(署長) 김영선(金英善)은 나를 우대(優待)했다.
    김영선에게 독립협회의 후원자이며 중추원 의장, 법부대신을 지낸 한규설이 청을 넣었기도 했지만 김영선의 호의는 진실했다. 그가 배려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독서와 저술활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생각 없는 짐승처럼 먹고 자다가 지쳐 죽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시간을 쪼개어 쓸 정도로 바쁜 감옥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독서와 저술, 거기에다 제국신문의 논설을 써서 밖으로 내보냈으며 이제 교우가 된 동지들을 모아놓고 성경 공부도 했다.

    내가 감옥에서 내보낸 논설은 인기가 있었는데 황실의 엄비(嚴妃)가 애독자라는 소문도 들었다.
    면회 온 정유건이 던지고 간 말은 나에게 자극제 역할을 한 것 같다. 나는 내 명성(名聲)을 유지시키려고 한 것이다.

    김영선의 도움으로 감옥 안에 서적실과 학당을 만들었으므로 내 일은 더 바빠졌다.
    조선은 물론이고 세상 어느 곳에도 감옥 안에 서적실과 학당은 없다면서 선교사들이 구경을 왔고 신문은 연일 떠들썩하게 보도를 했다.

    「참으로 바쁘시오.」
    서적실로 만든 마룻방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김영선이 다가와 말했다.

    나는 국제법 관련 서적인 공법편람(公法便覽)을 읽는 중이었다.
    책장을 덮은 내가 김영선을 향해 바로 앉았다.

    「서장님 덕분으로 제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오?」
    「이렇게 공부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허어, 그건 본인의 의지 때문이 아닙니까? 당치도 않습니다.」

    마주앉은 김영선이 은근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그 동안 나는 감옥서에 갇혀있게 되면서 수많은 영문, 한문 일간지와 월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선교사들이 보내주는 각종 서적을 탐독했다.

    내가 바깥 세상에 있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읽고 쓰고, 번역을 했으며 강의를 했다. 밖에서 수십 년이 걸려도 그만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눈을 뜨고 나서 다시 잘 때까지 몇십평 넓이의 감옥서 안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밖에 나가서 써 먹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탐구열이 강했기 때문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승부욕일 것이다.
    나는 지기 싫다는 승부욕이 강하다.
    6대 독자로 자라난데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神童) 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인지 겸손하지 못하고 포용력도 부족하다. 내가 감옥서에 갇혀있지 않았다면 내 결점을 끄집어낼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김영선이 말을 이었다.
    「개혁 운동은 다 좌절 되었소.」
    나는 머리만 끄덕였다.

    이제 임금 주변에는 아첨배들만 모여 있는 형국이다. 백성들과의 연결 고리는 사라졌다.

    일본이 제 품안에 들어왔던 안경수를 거침없이 임금에게 던져준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친일 개화파 따위도 이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일본이 직접 조선을 관리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감옥서에 들어온 개혁 운동가들의 생각도 모두 같다.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임금은 기를 쓰고 개혁을 막았으니 이젠 혼자서 그 댓가를 받으셔야겠지요.」

    김영선의 의중이 짐작되는 터라 나도 터놓고 말을 이었다.
    「자업자득입니다. 대한제국은 망했다가 다시 새 체제로 일어나야 합니다.」

    대역무도한 발언이었지만 이젠 시중에서도 공공연하게 지껄인다고 했다.
    그렇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만 살려 놓았다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민중의 소리를 외면한 임금은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