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⑳ 

     안경수(安駉壽)는 일청한(日,靑,韓) 삼국동맹론을 주장했는데 당시의 개화파 세력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일, 청, 한 삼국동맹론이란 요약해서 말하면 서양 침략세력을 동양 3국이 함께 대항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동양 3국 중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일본이 주도하여 서양과의 싸움을 이끌어야만 했다.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일본의 야욕이 드러났다.
    일본은 동반자 역할로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1895년 민비를 시해함으로써 조선 지식인의 기대가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만방에 알린 셈이 되었다.

    다음날 저녁, 내가 다시 독방 앞을 지날 적에 안경수가 불렀다.
    「여보게, 우남. 나 좀 보게.」

    창살 앞에 멈춰선 내가 안을 보았다.
    그늘 속에 앉아있는 안경수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나는 감방 안에서만은 돌아다닐 수 있는 터라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대감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안경수가 이만 드러내고 소리 없이 웃었다.
    「우남, 난 내일 새벽에 죽네.」
    놀란 내가 숨을 삼켰을 때 안경수가 말을 잇는다.
    「조금 전에 감옥서 서장(署長)이 말해주고 가는구먼. 서장도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묻길래 없다고 했네.」
    「대감.」

    불러놓고 말문이 막힌 내가 침만 삼켰을 때 안경수가 물었다.
    「우남, 훗날에 조선 백성이 내 이름을 기억이나 할까?」
    「그러믄요.」

    창살에 바짝 붙어선 내가 열심히 말했다.
    「대감은 진실로 백성을 아낀 애국자올시다.」
    「대한제국의 역적으로 죽었어도 말인가?」
    「대감, 훗날의 평가는 달라질 것입니다.」
    「우남, 그대는 오래 살아야하네.」

    눈을 치켜뜬 안경수가 한마디씩 힘주어 말을 잇는다.
    「그래서 나라가 바로 잡히거든 내 무덤 앞에 와서 말해주게.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말이네.」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후손에게도 꼭 전하지요.」
    「그렇다면 여한이 없네.」

    길게 숨을 뱉은 안경수가 나를 똑바로 보았다.
    「우남. 일본은 곧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걸세. 내가 일본에 있는 동안 그들의 동향을 알 수가 있었어.」

    나는 잠자코 시선만 주었고 안경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또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그 주역이야. 이제 눈에 가시겪인 러시아만 젖히고 나면 조선은 일본령이 될 걸세.」

    그러더니 다시 안경수가 길게 숨을 뱉았다.
    「이런 상황인데 황제는 매관매직이나 일삼고 독립협회를 해체시켜 왕실만 지키다니. 나라가 일본 식민지로 되어도 내장원의 재물과 왕실만 존속시키면 된단 말인가?」

    이제 왕실은 일본군이 지키고 있는 것이나 같다.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곧 반역 세력으로 간주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때 안경수가 머리를 숙이면서 탄식했다.
    「아아, 조선이여. 조선이여. 언제 다시 부흥할 것인가?」

    안경수가 머리를 들지 않았으므로 나는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안경수는 처형되었다.
    처형장이 바로 감옥 안에 있어서 나는 칼날을 내려치는 도부수의 기합소리까지 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