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⑯

     판결이 났다.
    최정식은 사형이 언도되었고 나는 태1백(笞一白)과 종신징역이다.
    나의 황제폐위 음모 가담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벗겨졌으며 탈출 미수도 종범(從犯)으로 처리된 것이다.

    선고를 받은 1899년 7월 11일, 최정식은 그날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태형을 받으려고 태형장에서 기다리는 내 옆으로 간수들에게 이끌린 최정식이 지나갔다.
    최정식이 우뚝 걸음을 멈췄으므로 대열이 어수선해졌다.

    「이야기 좀 하겠소.」
    하고 최정식이 말하자 간수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사형수의 원(願)은 가능한 일이면 다 들어준다.

    최정식이 꿇어앉아있는 내 옆으로 다가와 섰다.
    손은 뒤로 묶였지만 얼굴은 평온했다. 그때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최형, 부디 편안히 가시오.」
    그러자 최정식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표정이 환해서 꾸민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우리는 힘껏 싸웠지 않은가? 그렇지? 승만, 말 좀 해보게.」
    최정식이 물었으므로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최형은 최선을 다했소.」
    「자네는 남아서 내 몫까지 싸워주게.」
    그러더니 최정식이 몸을 돌렸다.

    나는 최정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았다.
    최정식은 당시 34세였으니 나보다 9살 연상이다.
    나는 태(笞) 1백대를 맞았는데 아버지한테 뇌물을 먹은 압뢰(押牢)가 때리는 시늉만 하고 끝냈다.

    그때부터 내 종신징역수(終身懲役囚)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성감옥에 수감되었는데 지난 6개월간의 심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찾을 수가 있었다. 모진 고문과 사형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내 육체와 정신을 허약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형이 확정된 후에 나를 찾아온 첫 면회인은 기석(奇石)이었다.
    기석은 미국공사관 고용인 직함을 밝히고 나를 찾아왔는데 공사관의 내락을 받은 것 같았다.
    간수 입회하에 마주보고 앉았을 때 기석이 먼저 긴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나리, 알렌 공사님과 아펜젤러 학당장님, 에비슨 제중원 원장님과 선교사님들이 애 많이 쓰셨습니다.」
    「고맙구나.」

    일본어 통역으로 미국공사관 일을 맡은 기석을 물끄러미 보았다.
    기석도 애를 많이 썼을 것이다. 눈빛만 보아도 기석의 진정을 읽을 수가 있다.

    그때 기석이 말을 잇는다.
    「아펜젤러님과 에비슨님이 매월 마님께 양식하고 장작, 옷감을 보내드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집안 걱정은 마시고.」
    「......」
    「무익이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면서 안부 전하라고 했습니다.」

    입회하는 간수는 무익이 학당이나 제중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알았을 것이었다.
    내 시선을 받은 기석이 헛기침을 했다.

    「이번 나리께서 살아나신 것에 무익이도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박무익의 일은 전쟁이다. 항일 의병장 출신인 박무익인 것이다.
    그때 기석이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바깥세상은 어지럽습니다. 대감댁들이 연달아서 폭탄을 맞아 불에 탔고 백주에 저격사건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허, 이보시오.」
    하고 입회 간수가 주의를 주었으므로 기석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길게 숨을 뱉았다. 박무익 등은 재판 분위기에 영향을 끼쳤고 알렌과 아펜젤러, 에비슨 등은 임금과 대신들에게 청을 넣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홍종우의 선의(善意)가 없었다면 나는 빠져나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