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⑮ 

     간수가 나를 데려간 곳은 평의원 건물 한쪽의 방이었다.
    방문을 연 간수가 먼저 나를 밀어 넣고는 말했다.
    「들어가 기다리시오.」

    방에 들어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빈 방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대여섯개가 놓여졌고 벽에 붙여진 책꽂이에는 책이 가득 찼다.

    그때 옆쪽 문이 열렸으므로 나는 머리를 들었다가 숨을 들이켰다.
    재판장 홍종우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거기 앉으시오.」
    놀란 나를 보더니 홍종우가 옆쪽 의자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책상 건너편에 앉는다. 내가 포승으로 묶인 두 손을 앞으로 한 채 의자에 앉자 홍종우가 시선을 주었다.

    홍종우가 누구인가?
    작년까지만 해도 내 적(敵)이었다. 원수였던 것이다.
    만민공동회, 독립협회를 궤멸시키려고 급조된 보부상들의 황국협회 회장을 지낸 홍종우다.

    그 놈들을 이끈 홍종우는 수십 번 우리를 습격했고 방해했다.
    임금의 개, 그 개떼의 두목을 지낸 인물이 지금 내 재판장이 되어있다.
    그러나 홍종우는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을 상해에서 암살한 조선 왕조의 충신인 것이다.
    그래서 임금으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고 1894년의 마지막 과거는 홍종우를 급제시키기 위해서 치러졌다는 소문도 있다.

    그때 홍종우가 입을 열었다.
    「이공, 몸을 보중하시오.」

    나는 그 간단한 말의 영문을 몰라 눈만 크게 떴다.
    홍종우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홍종우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이공이 일본의 앞잡이가 아니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오.」

    나는 숨을 죽였고 홍종우의 목소리는 열기가 띄워졌다.
    「이공이 박영효의 군자금을 거부 한 것도 알고 지난번 모의에도 가담하지 않은 것도 압니다. 그러나 벗어날 증거는 부족하오.」

    「나한테 이러시는 이유를 들읍시다.」
    내가 마른 목소리로 물었을 때 홍종우가 빙그레 웃는다.

    홍종우는 1850년 생으로 50이니 딱 내 나이의 두배였다.
    주름 잡힌 얼굴은 지쳐보였다. 김옥균을 암살한 격렬함은 보이지 않고 대신 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 되어 파리에서 박물관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춘향전」과 「심청전」을 번역한 개화학자 분위기가 풍겼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흔들리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홍종우가 쓴웃음을 짓는다.
    「황국협회 회원은 각지에 퍼져 있소. 박영효가 있는 일본에도, 그대들의 동향은 다 알 수가 있소.」
    그러더니 외면한 채 말을 잇는다.
    「그대들만 애국하고 개혁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오.」

    나는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임금을 모시고 어떻게 개혁을 하겠느냐고 묻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른바 근왕개혁주의자들이다. 황국협회나 임금 측근 중에서 그런 부류들이 있다.

    그때 홍종우가 머리를 들고 나를 보았다. 얼굴이 다시 굳어져 있다.
    「폐하를 개혁으로 모시고 가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오.」
    홍종우의 열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일본이나 러시아 세력을 배경으로 삼는다면 그놈들 꼭두각시가 될 뿐이오. 그리고 백성들이 용납하지 않소.」

    그러더니 홍종우가 길게 숨을 뱉는다.
    「내가 이공의 목숨은 구해내리다. 그러니 함께 폐하와 대한제국을 위해 애써 보십니다.」

    나는 가슴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살았다는 감개 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홍종우의 말 내용은 뒷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