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⑫ 

     나는 대역죄인(大逆罪人)이 되었다.
    박영효의 황제폐위 음모에 가담한데다 무기를 소지하고 탈옥까지 했으니 사형에 처해질 것은 당연했다.

    경무청에 끌려간 나는 매일 잔혹한 고문을 받았는데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밤에 칼을 쓰고 두손 두발을 쇠사슬로 묶인 채 잠이 들면서 제발 이대로 죽게 해주십사 소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한테서 권총의 출처를 알아내려 했고 박영효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거사가 성공한 후의 보상까지를 물었다. 나는 권총은 아직 잡히지 않은 최정식한테 받았다고 했을 뿐이다.

    어느 날, 나를 가장 집요하게 고문하던 박돌팍이란 자가 말했다.
    「이놈아, 우리는 네가 종로 거리에서 군중을 이끌려고 한 것도 다 안다.」

    정신이 혼미했던 나는 마치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흠칫 눈을 떴다.
    박돌팍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 동지들이 기를 썼지만 이놈아, 조선 백성들이 일본놈 앞잡이들을 따를 것 같으냐?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그 순간 나는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다리 사이에 끼워진 모난 나무 조각이 주는 고통도 사라졌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으므로 나는 이를 악물었다. 고문을 당하는 방 안이 어두워서 그 자는 내 눈물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박돌팍이 말을 이었다.
    「독립협회, 만민공동회는 끝장이 났어. 이놈아, 박영효가 뒤에 있다는 것이 드러난 후에는 모두 등을 돌렸단 말이다.」

    그것이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무지한 놈까지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으니 사실이었다.

    백성들의 일본에 대한 거부감은 개혁 열기보다 더 드세었던 것이다.
    부패한 왕조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찌르다가도 일본 낭인 무리가 왕비를 살해하자 온 나라에 의병이 일어났지 않은가 말이다.

    겨우 불씨를 일으킨 민중조직이 결국 그렇게 와해되었다.
    그날 어떻게 감옥으로 되돌아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삶의 의욕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고문을 당해도 감각이 무디어졌으며 식욕도 잃어서 몸이 급격하게 쇠약해졌다.

    내가 재판을 받기 전에 죽을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고문도 뜸해졌다.
    그러나 간수들의 말을 들으면 내가 사형을 당할 것은 분명했다.
    수십년씩 간수 생활을 해온 자들은 재판관보다 더 정확하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을 때 내가 들어있는 감방으로 새 죄수 하나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목에 칼까지 쓰고 있는 내 옆으로 그 사내가 다가와 앉았다.
    사내는 손만 등 뒤로 묶여 있어서 행동이 자유로운 편이다.

    「소생은 김막동이라 하고 조병식이 집 대문에다 돌맹이를 던진 죄로 잡혀 왔습니다.」
    낮게 말한 사내의 두 눈이 어둠속에서 번들거리고 있다. 내 시선을 받은 사내가 말을 잇는다.
    「나리, 기석이를 아시지요?」

    눈을 치켜 뜬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압니다. 그건 왜 물으시오?」
    「기석이가 나리께 말씀 드리라고 소생을 보냈습니다. 소생은 곧 풀려날겁니다.」
    「......」

    「지난번 종로거리에 군중이 모이지 않은 것은 일본 공사관 측의 기별을 받은 왕실이 시위대를 풀어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간부들의 모임 장소를 덮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또 이번 모임은 박영효가 주선했다고 군중들에게 선전을 했다는 군요. 그래서 군중들이 등을 돌렸답니다.」

    나는 길게 숨을 뱉았다.
    이제는 놀랍지도 마음이 격해지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