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③

     

    환자로 가장한 오선희가 찾아왔을 때는 저녁 무렵이다.
    사택의 대기실에서 마주앉은 오선희의 얼굴은 그늘이 졌다.

     

    「아가씨도 쫓기고 있소?」

    걱정이 된 내가 물었더니 오선희는 머리를 저었다.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더니 제가 수배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다행이오.」

    「하지만...」

     

    말을 멈춘 오선희가 나에게 시선만 준다.
    나는 그 뒷말을 듣지 않아도 안다. 나는 수배중인 범인이다.
    그 이유는 확실히 모르지만 박영효의 거사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매섭게 추운 날씨였고 밖에는 바람결에 눈발까지 섞여져 있다.

    그때 오선희가 말했다.

     

    「이번 거사 실패로 경계가 삼엄해져서 행동하기가 힘듭니다.」

    「당분간은 숨어 계시오. 지금은 아버님 친구분들을 찾아다니실 시기가 아니오.」

    「저는 선생님이 걱정입니다.」

     

    다소곳이 말한 오선희의 검은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보았다.
    가슴이 답답해진 나는 소리죽여 숨을 뱉는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앉아있고 싶다는 욕심이 일어났다. 오선희는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참, 이것, 드릴 것이 있소.」

    하고 내가 가슴에 넣고 온 종이로 싼 토지 문서를 꺼내 오선희에게 내밀었다.
    어제 재석이 박무익한테서 받아온 오석구의 토지 문서였다.
    오선희가 오면 돌려주려고 준비해 놓은 것이다.

     

    문서를 받아 펴본 오선희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니, 그럼.」

    오선희는 모리가 피습을 당한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공사관은 물론 황실에서도 쉬쉬했던 터라 소문만 번졌다가 시드는 중이다.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고. 아버님이 석방되시고 나서 의병들이 뒤를 쫓아가 빼내온 것이오.」

    「세상에.」

    「모리는 이미 죽었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놀란 오선희가 몸을 굳혔을 때 내가 말을 이었다.

    「나도 언제 잡혀 죽을지도 알 수 없는 몸. 소원이 있다면 새 조선이 일어나는 것이나 보고 죽었으면 합니다.」

    「이런 왕조가 군림하는 조선은 싫습니다. 군주를 바꿔야 합니다.」

     

    머리까지 저으며 말을 받았던 오선희가 생기 띤 얼굴로 나를 보았다.

    「공화정의 선출된 대통령이 통치를 해야 됩니다.」

     

    당돌하다.
    당시에 이런 사고(思考)를 가진 신여성이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몇 명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시선을 준채로 오선희가 한마디씩 차분하게 말한다.

    「저는 끝까지 선생님을 따를테니까요.」

     

    나는 숨을 삼켰다. 가슴이 울렁거렸고 얼굴에 열기가 올랐으므로 나는 시선을 내렸다.

    「과분합니다. 아가씨.」

    「전 열아홉입니다. 선생님은 앞으로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머리를 든 나는 오선희의 뜨거운 시선을 다시 받았다. 방 안에 잠깐 정적이 덮여졌는데 나는 그 순간 또다시 가슴이 저리는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선희라고 부르지.」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제 늦었어. 돌아가 봐.」

     

    내 입에서 의도하지도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고 오선희는 순순히 일어섰다.

    「자주 들릴께요. 선생님.」

    「몸 조심하고.」

     

    우리는 마주보고 서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