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째 Lucy 이야기 ① 

     수기를 덮은 나는 길게 숨을 뱉았다.
    오후 6시 반, 나는 지금 호텔 라운지의 창가에 혼자 앉아있다.

    「격렬하네.」
    문득 내 입에서 저절로 그런 단어가 뱉아졌다.
    격렬한 인생이다. 젊은 시절에 이만큼 치열하게 산 사람도 드물 것이다.

    부패한 왕조, 침략의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외세와의 사이에 끼어 분투하는 이승만의 인생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커피 잔을 들고 식은 커피를 한 모금 삼킨 내가 문득 팔목시계를 보고 나서 핸드폰을 들었다.
    지금 뉴욕은 오전 4시 반이다. 스티브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버튼을 누르자 신호음이 세 번 울리고 나서 스티브가 응답했다.
    「루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전이 있나요?」

    의뢰한지 하루가 지났을 뿐이어서 나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자 스티브가 대답했다.
    「루시, 이곳은 지금도 조사 중이지만 한국 의뢰인의 일 처리 속도가 빠르군요.」
    「무슨 말예요?」
    「당신이 의뢰한 테드 말입니다. 한국명 김태수의 뿌리가 확인 되었습니다.」

    놀란 나는 입만 딱 벌렸다. 그러고보니 한국인의 일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그 때 스티브가 물었다.
    「루시, 팩스로 보내드릴까요?」
    「아니, 전화로 먼저 말해줘요. 스티브.」
    「예, 테드의 아버지 김영복은 1943년생으로 현재 66세, 생존 해 있습니다.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중소기업 수준입니다.」

    호흡을 고른 스티브가 말을 잇는다.
    「김영복의 부친 김만기는 1910년생으로 1972년에 사망했습니다. 자료를 찾느라고 의뢰인은 애를 먹었다고 생색을 내는군요. 의뢰인은 공개된 조선총독부 내부 기록에다 중국의 한국 교포를 통해 중국 측이 보유한 자료까지 확보했다는 겁니다. 만 하루만에 대단한 솜씨죠. 한국인들의 속도는 놀랍습니다.」
    「그러네요.」
    「특별비로 5천불을 요구해서 줬는데 괜찮겠지요?」
    「물론이죠. 스티브.」

    「김만기는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대위까지 진급했습니다. 1945년 종전이 되었을 때 만주 지역에서 헌병 지대장을 지내다가 귀국했지요. 신생 대한민국에서 왠일인지 친일파로 처벌 받지 않고 경찰서장까지 지내다 죽었습니다.」
    「......」
    「자, 이젠 김만기의 부친 김재석 차례군요. 김재석은 1874년생으로 되어 있는데 생전의 행적은 찾지 못했습니다. 1912년에 사망 한 것으로 되어 있군요.」
    「잠깐만요.」

    머리를 기울인 내가 스티브의 말꼬리를 잡았다.

    「김재석이라고 했지요? 주소는요?」
    「주소는 경기도 이천이라는 곳입니다.」
    「이천이라고 했어요?」
    「그렇습니다.」
    「이름이 재석 아닌가요?」
    「그래요. 성은 김이죠. 루시.」

    나는 심호흡을 했다. 이승만의 측근 경호원이 재석이다. 그렇다면 이승만은 수기에 성을 빼놓고 이름만 적었는가?

    한동안 핸드폰을 귀에 붙인 채 생각에 빠져 있었더니 스티브가 부른다.
    「루시, 뭐가 이상합니까?」
    「아녜요. 스티브. 이제 곧 알게 되겠죠. 정말 수고하셨어요. 스티브.」

    그리고는 내가 탁자 위에 놓인 수기를 보았다.
    만일 수기의 재석이 김재석이라면 테드의 증조부는 이승만의 경호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