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27) 

     내가 김모를 똑바로 보았다.

    「사양하겠소.」

    김모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지만 나는 말을 이었다.
    「후의는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난 중추원 의관만으로도 과분합니다.」

    「오늘 재기가감자 후보 명단을 폐하께 올리실 예정이지요?」

    불쑥 김모가 묻는 바람에 나는 호흡을 가누고 대답했다.
    「그렇소. 이미 의관들의 동의도 얻어놓았습니다.」
    「역적 박영효를 공론화(公論化) 시키려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이 알 필요가 없소.」
    「이의관은 역적과 동류로 취급될 것이오.」

    눈을 치켜뜬 김모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구려.」
    「의(義)와 불의(不義)를 분간하지 못하는 당신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그리고는 내가 발을 떼었고 눈을 부라린 재석이 옆을 따른다.
    그러나 내 가슴은 울렁거렸고 얼굴은 나무토막처럼 굳어졌다.

    김모. 즉, 황제 직속의 궁내부 관리로부터 위협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중추원 의관들의 동의를 받은 재기가감자 명단을 최정덕과 함께 제출했다.
    물론 황제께 올린 것이다.

    20여인이었던 동조자가 나중에는 18명으로 줄었지만 의관 50명중 18명의 동의를 받은 것이다.

    「곧 황제께서 조치를 하실 것이네.」
    오후에 퇴청하는 나에게 윤치호가 말했다.
    윤치호의 얼굴에는 그늘이 덮여져 있다.
    주위를 둘러본 윤치호가 길게 숨을 뱉는다.

    「어쩔수 없지. 이제 조치를 기다리는 수밖에.」
    「대감, 몸을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머리를 숙이며 내가 말했더니 윤치호가 눈을 크게 떴다.
    「우남, 무슨 인사가 그런가?」
    「중추원 의관직을 그만두게 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아니야. 기다려보세.」

    우리는 어느덧 어둠이 덮여지고 있는 종로 거리로 나와 섰다.
    의관들도 다 흩어져서 우리는 둘이 마주보고 섰다.

    나는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윤치호의 초췌한 얼굴을 보았다.
    애국자의 얼굴이다.
    그러고보면 오전에 만난 궁내부의 김모도 조선 황실에 충성하면서 스스로 애국한다고 느낄 것이리라.

    과연 역사는 그것을 판단 해줄 수나 있을 것인가?

    만감이 교차한 내 표정을 보더니 윤치호가 긴 숨을 뱉으며 말했다.
    「이보게, 우남. 거처가 마땅치 않거든 내게로 오게.」
    윤치호도 내가 은신처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남산 근처의 사가(私家)로 돌아왔을 때는 깊은 밤이었다.
    정동교회에 들렀다가 왔기 때문이다.

    마당으로 들어선 나는 기다리고 서있는 허기영을 보았다.
    허기영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이보게. 오전에 시위대 병사들이 와서 외숙을 체포해 가셨네.」

    놀란 나는 눈만 크게 떴다.
    허기영의 외숙이란 바로 오선희의 부친 오석구 전(前) 목사를 말한다.
    허기영이 말을 잇는다.
    「그놈들은 선희까지 찾았는데 마침 이곳에 있어서 체포를 면했지만.」

    어깨를 늘어뜨린 허기영이 길게 숨을 뱉는다.
    「나한테 그 말을 들은 선희가 아버지를 찾는다고 뛰쳐나갔는데 내가 잡아두지를 못했네 그려.」

    다시 놀란 나는 어두운 집안을 둘러보았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