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⑱ 

     중추원의 재기가감자(才器可堪者) 후보, 즉 정부대신임용 후보자로 박영효를 포함시키자는 나와 최정덕 등의 주장은 금방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중추원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중추원 의원 50인은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에서 17인이 선출되었고 황국협회 출신과 황제 직할 세력이 33명으로 구성된 것이다. 거기에다 독립협회 내부에서도 온건파는 박영효의 영입을 반대했다.

    「박대감을 양지로 끌어들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박대감은 지금처럼 오해를 받지도 않을 것이니 양측에 다 이롭지 않겠습니까?」
    내가 말했을 때 둘러앉은 10여명의 의관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의관들의 모임은 학부(學部)의 집강소 건물에서 열렸다.
    학부협판을 지낸 윤치호가 이쪽 출입이 잦았기 때문이다.
    집강소는 넓어서 더 춥다. 사방 문을 닫았지만 외풍이 심해서 드러난 손발이 시렸다.

    내가 말을 이었다.
    「박대감의 음모론도 양지에 나오면 쑥 들어가게 될테니까요. 황제께서 결단만 내려주시면 개혁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탁상공론이요.」
    불쑥 말을 뱉은 사내는 황국협회 출신의 한기숙이다.
    황국협회 출신이라고 해서 다 보부상이 아니다. 한기숙은 보성군수를 지낸 관료 출신이다. 황국협회의 추천을 받아 의관이 된 것이다.

    한기숙이 턱수염을 쓸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이의관, 박영효는 국모 시해를 사주한 역적이요. 지금도 일본땅에 숨어서 끊임없이 대한제국에 반역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알고있소. 그런 박영효를 대신 후보에 넣다니, 그것도 황제 폐하께 대한 반역 행위나 같소.」
    「죄가 있다면 명명백백히 가려내어 벌을 받게하면 됩니다.」
    「박영효는 조선땅에 오지도 못하겠지만 중추원에서 대신임용후보에 넣는다는 것 부터가 그자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것이오.」

    한기숙도 지지않았고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나 자신도 박영효가 재기가감자 명단에 넣어졌다고 귀국할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잠자코 듣기만 하던 중추원 부의장 윤치호가 말했다.
    「의관들의 의견을 더 듣고 중지를 모아 결정하기로 하십시다.」
    그러더니 머리를 돌려 나를 보았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이의관은 잘못하면 박영효의 일파로 오해 받을수도 있겠소. 그러니 의관들 앞에서는 박대감 칭호는 삼가주시오.」
    「알겠습니다.」

    윤치호의 배려가 가슴에 닿았으므로 내가 좌중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표현이 서툴렀습니다. 앞으로 박영효의 호칭은 주의하겠습니다.」

    물론 윤치호와 나는 사석에서 같이 박영효를 대감이라 부른다.
    더욱이 윤치호와 박영효는 개화파 동지인데다 같은 연배인 것이다.
    박영효가 1861년생이니 올해 38세요, 윤치호는 1865년생으로 34세다.

    회의를 마치고 학부 청사를 나왔을 때 옆으로 다가왔던 재석이 낮게 말했다.
    「나으리, 둘이 뒤에 붙었습니다.」

    오전 12시경이었으니 아직 한낮인데다 학부 청사 앞이다. 내 시선을 받은 재석이 말을 잇는다.
    「청사 안에서부터 따라 나왔습니다.」

    순간 버럭 궁금증이 일어난 내가 걸으면서 머리만 돌려 보았더니 바로 열걸음쯤 뒤로 두 사내가 따라오고 있었다. 둘 다 양복 차림에 단발이다.
    내 시선과 마주친 둘 중 하나가 거침없이 말했다.

    「이의관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청사 안에서부터 따라 나왔다면 관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