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가끔 탈북자인 나에게 북한에서 본 대한민국을 묻는다.
    나는 그때마다 드라마 대한민국이었다고 말한다. 한강의 기적도 드라마지만 실제로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햇볕정책 때문에 남한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비열한 거짓말이다. 북한 주민들은 드라마에서 남한을 직접 보았고 그 문화적 충격이 주는 감동으로 민족의 자긍심은 더 컸다. 
    절제되고 억제된 북한선전의 언어기술에 세뇌된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 남한 드라마는 평범한 일상의 대사마저도 가슴을 적시기엔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남한에서 본 대한민국은 싸움의 나라이다. 

    내가 생각했던 자유민주주의란 시장경쟁 국가인데, 아니 남한은 싸움으로 국력을 소비하는 이상한 극단 민주주의이념국가 같았다. 인터넷과 자유언론, 글로벌경제를 가지고 있는 민주제도 안에서도 민주의 탈환과 투쟁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정치세력과 일부 시민단체들을 보면 유토피아보다 더 공상적인 무정부주의자들의 무식한 행진을 보는 듯하다. 

    나는 그들의 민주주의를 혁명민주주의로 본다. 그 민주주의는 경제의 급성장과 문명 격차에서 비롯된 개인의 한계가 집체주의에 의존하게 했고, 이것이 결국 군사정권을 붕괴시키는 민중봉기의 촉매제로 기여한 의미는 있다. 그러나 민주화의 속도를 가속화시킨 측면에선 혁명적이었지만 그 혁명 후의 민주주의 평화정착은 좌우대립이라는 또 다른 이념의 암초에 부딪혀 표류됐다고 본다. 

    즉 국민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좌우의 민주주의로 분열되었고 이는 곧 남남갈등이라는 싸움의 근원지로 되고 말았다. 격렬한 언어에서 태어난 좌익들의 민주주의는 이념에 포로가 된 채 아직도 그 연장선에서 싸움의 승리를 외치고 있는 듯하다. 하여 저항만 있고 인간이 없는 증오의 민주주의로 고착됐으며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까지 반정부데모의 깃발로 악용하는 비인도적 민주주의로 저질화 된 것만 같다. 

    문명수준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은 언어이다. 수령신격화로 언어가 극히 정화된 북한에서는 욕이란 극히 개인적 인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내가 촛불시위 현장에서 가장 경악했던 것은 남녀노소가 대낮에 거리에서 일제히 합창하는 집단적인 망언들이었다. 
    60세 어르신을 “쥐..”라고 거리낌 없이 욕할 줄 아는 어린애들과 부추기는 타락한 어른들을 보았을 때 나는 자유의 다른 면을 보았다. 어떻게 도시 네거리에서 예의범절이 공공연히 위반될 수 있으며 그것도 시민의 탈을 쓴 집단이 집단적으로 행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결국 좌익들의 민주도용으로 남한에는 아직 유럽이나 다른 선진국들처럼 성숙된 시민의 권리와 요구로 인정할 수 있는 민주적 정서가 덜 정착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현 정부를 적으로 간주하며 거리를 점거하는 좌익들의 계급적 민주주의를 차단할 시민정신이 부족한 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상생과 화합이 아니라 단결과 투쟁이라는 강경 글발을 머리띠로 두르고 파업을 일삼는 노조는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지 않는가? 국가발전을 위한 선의의 경쟁과 치열한 합의과정이라는 민주적 원칙이나 윤리의식은 전혀 없이 적아간 싸움으로 치닫는 정치문화는 분명히 조폭수준이 아닌가? 

    남한에서의 좌우대립은 단순히 이념갈등이 아니라 문명의 갈등이며 민주주의의 대립니다. 투쟁의 편리를 위해 자기들 스스로가 독재를 만들어내며 민주의 이름으로 자유를 테러하는 극소수 좌익들과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묵묵히 지켜온 애국국민들을 포함하는 다수 우익과의 대결이다. 

    그런데 문제는 좌익들이 언제나 먼저 행동하며 그래서 단어가치도 먼저 선점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진보이며 사회변화의 선구적 역할이다. 이것이 그들의 민주주의이며 민주이름의 독점으로 감행되는 자유질서의 파괴이기도 하다. 

    박정희 개발독재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중국의 일당체제가 대륙신화를 창조한 것은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와 국민의 자유가 더 우선시되는 제한적 자유민주주의, 법치 민주주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국가를 위해 개인의 자유가 억제되는 과거로 돌아가선 안 되지만 그러나 그 과거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추앙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이제는 이 남한에도 정착되어야 한다고 본다. 

    과도한 민주주의는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흔들며 이는 시장의 자율화가 개인의 자율화에 침해받는 난해한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지금 좌익들이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탈북자인 나는 과잉 민주주의로 경제성장을 멈춘 필리핀처럼 데모주의로 치닫는 오늘의 남한 민주주의가 결코 김정일 정권이후 북한에 가져갈 모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