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⑪ 

     윤치호나 이상재 등 독립협회 거물들은 고종 황제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이 남아있다.
    그래서 황제의 치부가 드러났을때도 예의를 잃지 않는다.
    배울만한 태도였으나 때로는 그것이 불의와의 타협, 또는 비굴한 자세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11월 29일 조선 역사상 최초의 국회형식인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에 임명되었다.

    약관 24세, 50명 의관중에 두 번째로 나이가 적었다.
    정9품(正九品)의 말직이었지만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셨다.
    과거 제도가 폐지되었을 때 나보다 더 낙망하셨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중추원 부의장이 된 윤치호로부터 의관직 제의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사양했다. 저런 임금의 신하가 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고 의관직을 받아들였다.
    임금이 진심으로 개혁을 위해 중추원 의관 50인을 뽑았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중추원이 임금의 꼭두각시 역할이 되어 있더라도 들어가 부딪쳐 보리라고 결심한 것이다. 만민공동회의 회장이었던 고영근이나 윤하영, 현세창은 의관직을 받지 않았다.

    그들도 임금을 신뢰하지 않았다.
    민중의 불만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번 보부상패한테 맞아죽은 신기료장수 김덕구의 장례가 크게 열렸는데 의사(義士) 칭호를 썼다. 만민공동회가 장례식을 주관한 터라 조정의 신경은 곤두서 있는 상황이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일본군과 황국협회가 궁성 경비를 맡기로 했다네.」
    만장을 휘날리며 떠나는 장례식 행렬을 보면서 윤치호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인파에 밀려 길가의 민가 담장에 등을 붙이고 섰다.
    굵게 쓴 김공(公) 덕구(德九)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내 시선을 받은 윤치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길영수한테서 직접 들었어.」

    길영수는 황국협회 회장을 지낸 거물이다.
    주위가 소란했으므로 내가 소리쳐 물었다.

    「임금이 조선 백성이나 조선 땅보다 왕권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윤치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황제께서는 삼위일체라고 생각하시네. 조선 땅, 백성이 자신의 몸과 같다고 말일세. 그러니 왕권에 대한 도전은 반역일 뿐이지.」
    「개혁은 불가능합니다.」
    「노력해야지. 중추원이 구성된 것은 그 시작 아닌가?」
    「그렇다면 박대감도 끌어들여 조정에 동참 시키십시다.」
    내가 불쑥 말했더니 윤치호가 눈을 크게 떴다.

    박대감이란 곧 박영효다.
    박영효는 두 번째 망명길을 떠난 후에 역적으로 몰려있는 상황이다.
    임금은 박영효가 민비 시해의 배후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내가 소리치듯 말을 이었다.
    「곧 중추원에서 재기가감자(才器可堪者) 후보를 선출하게 될 것 아닙니까?
    그 후보 명단에 박대감을 넣어야 합니다.」

    재기가감자는 곧 정부대신 임용 후보자를 말한다.
    그 후보자에 박영효를 넣어 벌할 것이 있으면 벌을 주고 필요하면 등용하면 될 것 아닌가?
    그것이 박영효에게도 떳떳하고 임금의 개혁 의지를 실증할 수 있으리라.

    그때 윤치호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과격한 방법이군. 과연 황제께서 받아들이실 것 같은가?」
    만일 받아들인다면 나는 임금의 개혁의지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임금과 함께 개혁에 매진하리라.

    그때 내 옆으로 다가온 사내가 말했다.
    「저기서 어떤 분이 뵙자고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