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⑩

     의병장 박무익은 민비가 시해되었을 때 경기도 광주를 무대로 의병을 일으킨 인물이다.
    의병의 충성 대상은 누구인가?
    첫 번째가 임금이다.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고 작정을 했던 박무익이 지금은 변했다.
    도성(都城)에 올라와 임금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시다가 돌아갔을 때 어둠속에 선 박무익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임금은 내장원의 돈을 절대로 내놓지 않을 겁니다. 그 돈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니까요. 임금에게 백성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렇다.
    그래서 헌의6조에 전국의 재정을 탁지부에서 관할하도록 하고 예산과 결산을 인민에게 공포하도록 했지만 임금은 1년 예산의 절반이 넘는 돈을 틀어쥐고 내놓지 않았다.
    황실 사업에나 돈을 썼고 계속해서 이권 사업에서 뇌물을 받아 챙겼다.

    매관매직이 성한 원인도 따지고 보면 황실의 부패에서 기인한다.
    임금 직속의 내장원 관리들은 쌀을 매점매석했다가 높은 가격으로 팔아 굶주린 백성으로부터도 이윤을 챙겼으며 조선 땅의 홍삼이나 광산의 판매권, 채굴권을 외국에 팔아넘기며 엄청난 뇌물을 받았다.

    이것은 모두 임금의 묵인 하에 이뤄진 것이다.
    임금이 곧 국가이며 국가의 재물은 곧 임금의 소유라는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난 이제 새 지도자를 위해 의병을 일으킬겁니다.」
    박무익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놀란 나는 숨을 죽였다.
    앞쪽의 나무그늘을 향한 채로 박무익이 말을 잇는다.

    「그동안 새 지도자는 상민과 양반, 조선 인민 모두로부터 신망을 받도록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맞는 말이었지만 내 가슴이 답답해졌다.
    과연 그때까지 외세가, 특히 일본이 기다려 줄 것인가?
    동학 혁명이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가 유림이나 조선 지배층의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임금은 동학군을 저지하려고 청군을 끌어들였으며 일본군까지 개입하게 만들어버렸다.

    만일 조선 백성의 신망을 받는 지도자가 나타나 의병을 일으켜 인민을 위한 새 나라를 세운다면 일본이 다 익은 고기를 먹지 않고 물러나겠는가?

    내가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만 급해지고 이룬 일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소.」
    내가 처음으로 박무익에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
    개혁을 해야겠다는 마음만 급할 뿐으로 방법도 불분명하고 공부(工夫)도 부족했다.
    그동안 개혁의 최선봉에 서서 목이 쉬도록 외치고 밤잠을 세웠지만 세상은 점점 더 암울해진다.

    그때 박무익이 불쑥 말했다.
    「나으리는 제대로 길을 걷고 계시오.」
    「그런 것 같습니까?」

    건성으로 되물은 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최선은 다하고 있으니 당장 죽어도 여한은 없습니다.」
    「아니오.」

    한 걸음 다가선 박무익이 머리를 저었다.
    「나으리는 오래 사셔야 하오. 그래서 내가 나으리를 위한 의병장으로 나서도록 하셔야 됩니다.」
    「과분합니다.」
    사기를 올려주려는 말이었지만 내 가슴은 더 내려앉는다.

    「곧 역적 김시준을 죽일겁니다.」
    박무익이 낮게 말했으므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조금 후에야 알아들었다.

    김시준은 황국협회의 간부로 행동대장이다.
    지금까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간부들의 습격은 김시준의 지휘 하에 이루어졌다.
    그 김시준을 내일 처단하겠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