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⑤ 

     그러나 나는 농성을 계속했다.

    석방된 간부들도 동조해 주었으므로 열기는 더 높아졌다.
    이제 나는 이번 투쟁의 지도자급으로 부상(浮上)되어 있었다.

    우리들의 요구는 지난번에 황제가 승인한 헌의6조를 조속히 시행하라는 것이었다.
    황제는 차일피일 시행을 늦추고 있었는데 속셈이야 뻔했다.
    익명서 공작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면 헌의6조는 백지가 되었을 것이다.

    경운궁(덕수궁) 인화문(仁化門) 밖에서 집회를 계속한지 나흘째 되는 날 저녁,
    만민공동회의 뛰어난 연사였던 백정 강석이 술국을 먹으려고 대회장 옆쪽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피습을 당했다. 뒷머리를 둔기로 맞아 중상을 입은 것이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하면 둘이 달려들어 하나는 잡고 또 하나는 쇠뭉치로 치더니 쏜살같이 달아났다고 했다.

    「보부상 놈들이네.」
    군중 속에 끼어 앉은 이상재가 길게 숨을 뱉으면서 말했다.

    닷새간 옥고를 치루고 나온데다 연일 집회를 하느라 이상재의 안색은 파리했다.
    이상재는 나보다 25년이나 연상인 49세인 것이다.

    「아아, 이 일을 어이할꼬. 외세를 막기에도 벅찬데 조정에서는 내분을 조장하고 있다니.」
    보부상은 곧 황국협회를 말하며 임금의 친위대인 것이다.

    지금 보부상 무리들은 길영수와 홍종우의 지휘 하에 수천명이 모여들고 있다.

    내가 굳어진 얼굴로 이상재를 위로했다.
    「민심은 이미 우리들 편입니다, 선생님. 여기서 물러나면 다시 기회를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동감일세.」

    머리를 끄덕인 이상재가 군중을 둘러보았다.
    인화문 밖 광장에는 어림잡아 5천 가까운 군중이 모였다.
    연단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연사는 박용만이다.
    박용만은 강석을 습격한 황국협회를 규탄하고 있었는데 말 끝마다 외침이 일어났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제가 독립협회를 부활시키고 5흉(五凶)을 파면시키라고 주장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머리를 끄덕인 이상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이젠 우리도 양보할 수 없네.」

    군중들을 헤치며 연단으로 가는 내 몸은 천근이나 되는 것처럼 무겁다.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임금 고종이 즉위한 때는 1863년,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그 5년 후인 1868년에 시작되었다.
    일본이 아무리 개화준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해도 30여년 후의 현실을 보라.
    조선은 왕권을 놓치 않으려는 임금이 어용 무뢰배를 동원하여 백주에 개화파를 습격시키고나 있다.

    연단으로 다가가던 나는 문득 군중 속에 낀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이시다 주우로(石田十郎)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이시다는 머리만 끄덕여 보였는데 태연했다.
    허름한 양복 차림에 단발머리가 군중 속에서 잘 어울렸다.
    저도 모르게 긴 숨을 뱉은 나는 머리를 돌렸다.

    일본은 독립협회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한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 임금이 독립협회를 해산시키고 간부들을 체포하는데 뒤에서 응원했다는 것이다.

    그때 내 옆으로 허기영이 다가왔다.
    허기영의 옆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서있다.
    뒤로 따내린 머리에 둥근 얼굴, 눈빛이 맑고 또렷했다.

    「이형, 다음에 이 학생이 연설을 하도록 해주시지요.」
    독립협회 회원이며 나와 함께 이번 농성을 이끌고 있는 허기영이 말을 잇는다.
    「이 학생은 연동여학교(連洞女學校) 학생으로 오선희라고 합니다.」

    여학생 연사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