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지역에 형성되는 기수역은 풍부한 염양염류로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한다. 광양만과 인접해 있는 섬진강 하구가 바로 대표적인 기수역이다. 섬진강은 우리나라 5대강 중 유일하게 하구둑이 없어 가장 맑고 청정한 수질을 자랑한다.

    그러나 깨끗한 수질에 가려져 있던 섬진강의 오래된 문제가 있다. 강물인 섬진강에서 바닷고기의 일종인 황어와 감성돔이 잡히고 담수어종은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기수역에 살아야 할 재첩들은 점점 도망치듯 위로 올라가고 있다. 섬진강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EBS '하나뿐인 지구'가 위험에 빠진 섬진강의 현재 모습을 진단하고, 원인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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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바다가 되어가다" 스틸 컷.  ⓒ EBS 제공

    섬진강 하구, 바다가 되어가다

    섬진강 하구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풍부해 재첩들에게는 최적의 서식지였다. 강의 풍부한 재첩은 오랫동안 섬진강 사람들의 주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섬진강에서 들리던 ‘재첩 사이소’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섬진교 아래 지역은 1976년 0.05‰이던 염분도가 현재는 27~28,9‰까지 올라갔다. 이미 섬진강 하구에서 15~20km 올라간 지점까지 바다화가 진행된 상태이다. 기수역이 사라지자 재첩들은 집단 폐사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재첩들은 살기 위해 점점 위로 올라가 버렸다. 담수어종이 사라진 강에는 바닷고기의 일종인 황어와 감성돔, 망둥이들이 차지했다. 강물이 바다가 돼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수역이 사라지다

    기수역이란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지역에 형성된 곳으로 소금의 농도가 0.5~30‰까지 다양해 여러 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다. 그런데 섬진강하구의 넓은 기수 지역은 현재 거의 바다화가 된 상태이다. 섬진강 기수지역은 현재 바닷물에 밀려 강 중류까지 올라가 있다. 강 중류의 강폭은 불과 50m안팎. 기수역의 구실을 하기 힘든 너비이다. 섬진강 하구가 기수역 기능을 상실하자 기수지역에서 살던 민물고기들이 사라졌다. 염분농도가 20퍼밀을 넘자 재첩은 강 중류지역인 섬진강교까지 밀려 올라갔다. 민물고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바닷고기의 일종인 황어와 감성돔, 붕장어 등이 차지했다. 재첩이 있던 자리에는 바다에서 나는 벚굴이 자라난다. 기수역이 사라지면 그 안에 서식하던 다양한 생물종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섬진강 하구 기수지역의 생태는 이미 바다 생태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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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바다가 되어가다" 스틸 컷.  ⓒ EBS 제공

    섬진강의 아픔은 고스란히 사람에게…

    흐드러지게 핀 섬진강 주변 봄꽃. 아름다운 풍광과 달리 섬진강에는 집단 폐사한 재첩들만이 널려 있다. 재첩이 죽어가면서 섬진강 사람들은 살길을 잃었다. 더 이상 재첩에만 의존 할 수 없어 택한 농사. 그러나 이마저도 소금물이 돼버린 지하수 때문에 여의치가 않다. 염분이 스민 지하수를 사용한 비닐하우스 농가는 철골이 녹슬고, 농작물은 수확하기도 전에 모두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섬진강 인근 기수지역인 곤양천은 아직까지 인간의 간섭이 덜해 기수역의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강 주변 갯벌에는 섬진강에서 사라진 민물 게가 풍부하고, 강바닥에는 재첩들이 널려 있다. 먹이가 풍부한 곳엔 자연히 다양한 새들이 찾아든다.

    섬진강의 변화, 원인은 무엇인가?

    섬진강 기수역이 사라지고 있는 원인은 한가지로 보기는 어렵다. 섬진강 상류의 댐에선 강물을 인근지역인 전남 순천, 여수, 광양지역의 용수로 공급하고 있다. 80년대 형성된 광양만 매립지로 인해 섬진강 하구의 넓이가 줄어들었고, 무분별한 강바닥의 모래채취로 인해 강물 밑으로 흐르는 바닷물이 들어오기 쉽게 되었다.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의 양이 줄고 밑에서 올라오는 바닷물이 늘자 기수역이 사라진 것이다. 광양환경연합의 사무국장 백성호씨는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수질악화로 방치해 두고 있는 영산강을 개선해, 인근지역의 용수로 활용하고, 광양만 일대로 빠져나가는 공업용수는 풍부한 바닷물을 이용해 공급하자는 것. 그렇게 되면 섬진강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유량이 늘어나, 섬진강 기수역이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뿐인 지구'에서 섬진강 기수역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대책을 생각해 본다.

    섬진강에 찾아온 봄

    최근 섬진강 주민들과 수자원 공사 측은 섬진강 염해 피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기로 협의했다. 이제 막 이곳의 피해를 돌려놓기 위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5대강 중 가장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는 섬진강에는 아직까지 그 깨끗한 자연을 기억하는 다양한 생명들이 찾아든다. 지난날 재첩의 최대 생산지였던 섬진강의 자연이 다시금 재첩과 담수어종을 불러들일 머지않은 그날을 기대해 본다.

    4월 1일 밤 11시 1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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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바다가 되어가다" 스틸 컷.  ⓒ E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