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일 오전 10시 45분.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한 직후 헬기에 몸을 실었다. 천안함 침몰현장인 서해 백령도를 찾기 위해서다. 백령도는 북한의 미사일포가 즐비한 장산곶에서 13.1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 그래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백령도를 방문한 대통령은 없었다.

    이날 이 대통령의 모든 행동은 북한에 관측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만큼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접경지역이라는 현장의 민감성과 위험성을 지적, 참모진은 만류했으나 이 대통령은 "내가 국군통수권자다. 더구나 지금 실종된 장병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국민 뿐 아니라 내 자식, 내 부하와 같은 사람들아니냐. 더 이상 앉아서만 볼 수 없다"고 강조하며 현장방문은 이뤄졌다.

    백령도 방문은 철통 보안속에 이뤄졌다. 풀기자로 동행취재한 본지 기자에게도 행선지를 극비에 부쳤으며,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이 대통령의 일정을 알 수 없었다. 헬기는 곧바로 백령도로 향하지 않고 서쪽으로 우회한 뒤 북상했다.

  • ▲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천안함 침몰사고 현장인 백령도를 방문,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독도함에서 수색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 뉴데일리 <=청와대 제공>
    ▲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천안함 침몰사고 현장인 백령도를 방문,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독도함에서 수색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 뉴데일리 <=청와대 제공>

    ◆ 12시 5분. 천안함 탐색구조단 지휘본부가 있는 독도함에 이 대통령이 도착했다. 독도함에서는 북녘땅의 윤곽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헬기에서 내린 이 대통령은 곧바로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독도함장 권혁민 대령으로부터 천안함 함수와 함미의 발견 위치를 확인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탐색구조단장 윤공용 소장으로부터 구조현황 브리핑을 받았다. 당초 6분간 예정된 브리핑이었지만 이 대통령이 청취 도중 여러 차례 질문을 던지며 상황을 꼼꼼히 점검한 탓에 30분 이상 소요됐다.

    이 자리에서 김 총장은 "탄약고 폭발 정황은 확인이 안되고 있다. 탄약 폭발은 안한 것으로 본다"며 천안함 침몰 원인이 내부에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이 대통령은 "아주 과학적이고, 종합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또 투명하게 공개하라. 그리고 절대 예단하지 마라"고 지시했다.

    브리핑이 끝난 뒤 상황실에서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 대통령이 무슨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조금 후 이 대통령은 "시간이 흘렀다고 하지만 기다리는 가족과 국민을 봐서라도 실종자 수색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뒤 "최전방 분단지역 NLL(북방한계선), 가장 위험한 지역에 근무하는, 전시체제에서 전쟁에 참여하는 병사와 똑같다. 최일선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다 이 일을 당한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전투하다 희생된 병사와 같이 인정하고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 ▲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고가 발생한 서해 백령도를 전격 방문했다. 고무보트를 이용, 실종자 가족이 있는 광양함으로 이동한 이 대통령. ⓒ 뉴데일리 <=청와대 제공>
    ▲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고가 발생한 서해 백령도를 전격 방문했다. 고무보트를 이용, 실종자 가족이 있는 광양함으로 이동한 이 대통령. ⓒ 뉴데일리 <=청와대 제공>

    ◆ 12시 50분. 이 대통령은 독도함 함미 웰덱(welldeck)으로 이동해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광양함까지 거리는 2.3km. 이 대통령은 고무보트인 '립보트'를 이용, 광양함으로 향했다.

    립보트는 운전석과 조수석, 그리고 그 뒤에 세개의 좌석이 있는 소형보트. 이 대통령과 김 총장, 김인종 경호처장이 앉고 뒤에는 수행한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이동관 홍보수석 등이 선 채로 기둥을 붙잡았다. "꽉 잡지 않으면 날아갈 정도로 위험하다"는 군 관계자의 경고가 있었다.
    이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 김 총장은 "파고가 높다. 보트가 심하게 요동칠 것이며 다량의 바닷물에 젖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13시 10분. 풍속 15노트, 1.5m높이의 파도를 뚫고 수차례 위아래로 출렁이며 10분 이상을 전진한 끝에 고무보트는 광양함 측면에 닿았다. 실종 국군의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흔들리는 소형보트를 넘어 한 줄 철제사다리에 의지한 채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한 발 한 발 광양함으로 올라갔다.

    이 대통령은 지체없이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가족들은 대통령을 둘러싸고 앉았다. 한 가족이 "여기 온 지가 나흘 째"라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지금 뭐라고 할 말이 없다"고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여러분의 심정이야 말할 것 없겠지만 나도 마음이 똑같다. 생사확인을 못해 나로서도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밝힌 뒤 가족들의 요구에 귀기울였다. 이 대통령은 시종 두 손을 모은 채 한 명 한 명 가족들과 눈을 맞추며 경청했고, 가족들은 "가장 위험하다는 NLL에서 밤새 나라를 지키다 사고난 것이 아닌가. 그 보다 더 큰 애국이 있나. 우리 국민 모두 그런 애국에 대해 안타까와 하는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위로에 고개 끄덕였다.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이 대통령은 여러번 말을 잇지 못하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내가 여러분 심정을 아니까 같이…"라면서 "여기 있는 동안에도 식사도 하시고…. 꼭 그렇게 하세요"라고 당부했다.

  • ▲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고가 발생한 서해 백령도를 전격 방문했다. 이 대통령이 광양함에서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 뉴데일리 <=청와대 제공> 
    ▲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고가 발생한 서해 백령도를 전격 방문했다. 이 대통령이 광양함에서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 뉴데일리 <=청와대 제공> 

    ◆ 14시 10분. 다시 독도함으로 돌아온 이 대통령은 헬기편으로 백령도 해병대6여단에 도착했다. 앞서 천안함 침몰사고를 점검했다면, 이번에는 전방의 안보태세를 살피고 경계강화를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통령은 장병들에게 "국민은 국군을 태산같이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북이 6자회담을 통해 핵을 포기할 때까지 철통같은 경계를 늦춰선 안된다"면서 "우리가 강할 때 방어가 될 수 있다. 약하면 오히려 위험하다. 방어력이 강하면 강할 수록 한반도 위기를 줄일 수 있다"고 역설했다.

    마지막 일정까지 끝내고 서울로 향하기 전 만난 이 대통령은 목이 잠긴 듯했다. 점심식사까지 거르고 백령도 현장방문을 마무리한 이 대통령이 청와대로 복귀한 시간은 16시 30분경. 헬기 탑승 시간은 약 3시간에 달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백령도 방문이 깜짝 방문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오늘 방문은 이 대통령 인식의 위중함, 여전히 실종상태에 있는 병사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