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영화. 왼쪽부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집행자', '하모니' ⓒ 뉴데일리
    ▲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영화. 왼쪽부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집행자', '하모니' ⓒ 뉴데일리

    “죽이는게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겁니다” - 영화 <집행자> 중

    폐지냐 존속이냐 숱한 논란을 일으켜온 사형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5일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합헌 판정을 내렸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사형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지난 1996년 11월 사형제도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우리 문화 수준이나 사회 현실에 비춰 사형제 폐지는 타당하지 않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지 13년만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59명의 사형수가 존재하지만, 1997년 문민정부 시절 23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한 이후 12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돼 있다. 사형제도는 있지만 사실상 사형을 집행하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사형제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 합헌 의견을 낸 이강국 소장과 이공현, 민형기, 이동흡, 송두환 등 5명의 재판관은 "사형제도는 우리 헌법이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형벌의 한 종류"라며 "국민의 생명권 보호와 정의실현 등 사회를 보호한다는 공익이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사익보다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다수의 무고한 생명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등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만 사형이 선고되는 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민형기, 송두환 재판관 등 2명은 "사형 대상 범죄를 축소하는 한편 사형제 존폐 여부는 위헌법률심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뜻을 수렴해 국회가 나서야 할 문제"라고 보충 의견을 제기했다.

     

  • ▲ 헌법재판소가 13년여만에 사형제도의 위헌성 여부를 심리한 끝에 다시 합헌 결정을 내린 가운데 25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등 종교ㆍ인권ㆍ시민단체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헌법재판소가 13년여만에 사형제도의 위헌성 여부를 심리한 끝에 다시 합헌 결정을 내린 가운데 25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등 종교ㆍ인권ㆍ시민단체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형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부정한다" = 반면 사형제가 전부 위헌이라고 판단한 김희옥, 김종대, 목영준 재판관 등 3명은 "사형제가 생명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들은 특히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을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사형제는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위헌이라고 본 조대현 재판관의 경우 "'비상계엄 하에선 사형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합헌"이라고 봤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선 생명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며 결과적으로 위헌 결정에 힘을 실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헌법이 보장한 생명권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서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면서도 “우리헌법은 110조에서 사형제도를 인정하고 있으며, 특정인간의 생명권 역시 타인의 생명권 보호나 중대한 공익을 위해 제한하는 것은 헌법의 테두리안에서 허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사형제도가 극악한 범죄에 대한 예방과 정의의 실현, 재발 방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헌재 노희범 공보관은 이날 "헌재의 결정은 사형제의 존치 여부와 무관한 법리적 판단이고 존폐 여부 자체는 입법 판단의 대상"이라며 "이번 결정은 사형제 논의의 마침표가 아니라 오히려 촉발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의 이번 선고는 2008년 9월 전남 보성 앞바다에서 남녀 여행객 4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70대 어부 오모씨의 신청을 받아들인 광주고법이 사형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 데 따른 것이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은 특정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될 경우 법원이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헌재에 위헌 여부를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제도로서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하면 해당 법률의 효력은 즉각 사라진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함께 심판대에 오른 현행 무기징역형 제도에 대해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은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