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들어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雩南 李承晩)에 대한 재조명 분위기가 활기를 띠고 있는 가운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 최대 업적이 주한미군의 존재 근거가 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회장 강영훈)와 우남이승만연구회(회장 이주영)가 18일 서울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홀에서 '이승만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정'이라는 주제로 연, 제52차 콜로퀴엄에서 차상철 충남대 사학과 교수는 "아이젠하워 미국 전 대통령이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한국전쟁의 종식을 꼽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최대 업적이라고 간주해도 좋을 것"이라며 "이승만의 신념과 판단, 그리고 결단에 의해 성립된 이 조약은 휴전 이후 반세기 동안 한반도에 '긴장 속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게 만든 기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 ▲ 차상철 충남대 사학과 교수  ⓒ 뉴데일리
    ▲ 차상철 충남대 사학과 교수  ⓒ 뉴데일리

    차 교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상징되는 한미군사동맹은 후일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로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면서 "이 조약은 북한을 포함한 공산주의 세력의 무력공격 충동을 사전에 억제시킴으로써 한국의 안보와 생존을 확보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밝혔다.

    차 교수는 사학자 천관우(千寬宇)의 예전 발언을 인용, "우리나라 같이 인물이 많지 않은 나라에서 사람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는 피했으면 좋겠다"며 "인물에 대해 부정적인 요소를 끄집어내자면, 또 흠을 찾자면 성할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는 한 인물에 대해 어떻게든 깎아내려서 인물을 죽이는 풍토가 심하다. 모쪼록 플러스 마이너스 되는 부분을 고르게 평가해 플러스가 많으면 이것을 좀더 부각시켜서 평가하면 좋겠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안보조약 체결 요구에 美 '주한미군 철수' 응수 = "철저한 반공·반소주의자이자 반일주의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해방 이후 미국을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 한국민이 의존해야만 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간주했습니다. 때문에 건국 초기부터 안보조약의 체결을 미국에게 요구해 왔으나 미국은 끝내 이 대통령의 요청을 외면했고 주한미군의 철수를 결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야기한 단초를 미국이 제공한 셈이죠."

    "이로 인해 발발한 한국전쟁을 계기로 이 전 대통령은 미국에게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 절실함을 역설했다"고 밝힌 차 교수는 "공산주의의 위협과 무력 공격에 대한 사전봉쇄 및 신속한 대응이 한국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있었지만 공산주의 못지않게 이 전 대통령에게 작용한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일본 팽창주의의 위협이었다"고 밝혔다.

  • ▲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회장 강영훈)와 우남이승만연구회(회장 이주영)는 18일 서울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홀에서 '이승만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정'이라는 주제로 '제52차 콜로퀴엄'을 열렸다.  ⓒ 뉴데일리
    ▲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회장 강영훈)와 우남이승만연구회(회장 이주영)는 18일 서울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홀에서 '이승만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정'이라는 주제로 '제52차 콜로퀴엄'을 열렸다.  ⓒ 뉴데일리

    ◇방위조약으로 '공산주의·일본팽창' 억제 = 따라서 "이 전 대통령에게 있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공산주의 세력과 일본의 팽창주의라는 두 개의 현실적인 위협으로부터 신생 독립국가인 대한민국의 생존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전'으로 간주됐다"고 차 교수는 주장했다.

    차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의 거듭되는 요구에도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 덜레스 국무장관, 콜린스 육군참모총장 등은 모두 방위조약 체결에 반대했다"고 말한 뒤 "그러나 '반공 포로 석방'이라는 이 전 대통령의 벼랑 끝 전략이 성공, 마침내 이 전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방위조약의 신속한 비준약속을 얻어냈고 미국도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휴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반공포로석방' 특단 조치에 미국 '꿈틀' = "한미 양국의 대치국면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취해진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특단의 조처는 방위조약의 신속한 체결을 미국에게 재촉하기 위한 최후의 승부수였습니다. 비록 이와 같은 이 대통령의 행동은 '칼 물고 뜀뛰기'같은 모험적인 것이긴 했지만 휴전의 성립을 위해 이 대통령의 협조가 절실했던 미국으로선 이 대통령에 대해 '경고'를 발하는 것 이외의 다른 제재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대통령의 승부수가 결국 성공한 겁니다."

  • ▲ 차상철 충남대 사학과 교수  ⓒ 뉴데일리
    ▲ 차상철 충남대 사학과 교수  ⓒ 뉴데일리

    차 교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매개로 미국은 남한에 대한 공산주의 세력의 침략위협을 봉쇄함과 동시에 이 전 대통령의 북진무력 통일 의지도 단념시키는 '이중봉쇄'이 효과를 기대했다"면서 반면 "이 전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위협과 공격을 사전에 막는 동시에 그가 심각하게 우려해 온 일본의 팽창주의적 야욕도 저지시키는 법적 장치를 확보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안보가 확실하게 보장되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이승만이 심은 나무 그늘 덕 보고있어" = 차 교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문제에 관한 두 나라의 협상에서 보여준 이 전 대통령의 굳은 의지와 과감한 행동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내포하고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정책적 유연성을 제한시킴으로써 미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풀이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철저한 지미(知美)주의자였던 동시에 반공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한 인물을 강업적으로 굴복시키거나 제거시킨다는 정책적선택은 공산주의 세력과의 열전과 냉전이 공존하는 상황 속에서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죠. 따라서 한국전쟁의 정치적 해결을 추구하기로 결정한 미국으로선 이 대통령에게 보다 많은 '당근'을 제시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피했습니다. 그 결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신속한 체결 및 비준을 촉구한 이승만의 요청에 미국이 전격 수락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끝으로 차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은 신생 독립국인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믿었고 나아가 그것을 심는데 성공했다"면서 "한국민은 그 '나무'의 그늘 덕을 아직까지 보고 있다"고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