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참사 사건을 심리중인 법정이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검사와 재판장에게 욕설을 퍼붓고 법정 질서를 교란하는 등, 법치국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아직 법치국가가 아니기 때문인가? 아니면 법치국를 허무는 힘이 법치국가를 지키는 힘보다 세기 때문인가?

  •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뉴데일리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뉴데일리

    소동을 피운 사람들에게 그 나름의 ‘어떤 이유’가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권위주의 시대도 아닌 민주주의 시대의 법정을 이렇게 파괴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이건 정말 나라도 아니다. 그러나 더 통탄할 일은 그런 풍조를 조장하는 요인과, 그런 풍조에 걸핏하면 앉은 자리에서 당하고 마는 우리 국가경영의 한 취약점이다.

    그런 풍조를 조장하는 요인-그것은 광장의 논리, 봉기의 논리, 폭력적 저항의 논리, 공권력 무시의 논리, “들고 일어나야 한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런 풍조에 휘둘리는 공권력, 정권, 정치 지도층의 겁먹은 기회주의가 또한 문제다. 氣 싸움, 힘겨루기에서 잘만 하면 공권력을 ”들고 일어나는 것‘으로 꺾을 수 있다는 심증을 준 것이다. 이른바 ’촛불‘ 이후에 말이다.

    ‘윗분’이 겁먹고, 공권력이 ‘윗분’의 겁먹었음을 눈치 채고, 그래서 공권력이 움찔하고, 일부 판사들이 “나도 법복만 입지 않았으면 저 사람들과 함께 했을 것‘이라며 난동을 처벌하지 않고, 일부 미디어들이 사사건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만 몰고 가니까 세상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치하에서 이 풍조를 제어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아마 못할지도 모른다. 질서를 지향하는 세력보다 ‘들고 일어나는’ 세력이 더 세다고 판단할수록 ‘윗분’은 그 쪽 눈치를 더 봐야겠다고 마음먹을 터이니까.

    어차피 이 정부에게 그런 풍조를 이겨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이제 너무 늦었는가? 그렇다면 누가 다른 사람이 나서서라도 “이러면 안 된다”고 ‘鶴의 一聲’을 질러야 할 것 아닌가? 이 시대엔 ‘영웅’이 없는가? 지엄해야 할 법정에서까지 ‘들고 일어나는’ ‘투사’만 득실거리고, 민주시대의 親법치주의 투사는 영 없다는 것인가? 영 없다면 나라의 꼴이 정말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