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 타운에 관한 얘기를 들은 것은 남양주의 몽골문화촌을 찾아가는 길에서였다. 택시운전사가 내리는 길에 귀띔을 해주었던 것이었다. 그 순간에는 얼핏 듣고 흘려버렸지만, 조만간에 생생하게 떠올라왔다.

    몽골 타운은 뭐 특별한 게 아니고 주말마다 한국에 나와 있는 몽골 사람들이 모이는 회합장소였다. 혜화동에 가면 필리핀 타운이라고 할 만한 게 있었다. 혜화동 성당을 중심으로 해서 펼쳐져 있는데, 주말이면 필리핀 사람들이 누가 특별히 모이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장소였다. 혜화동의 필리핀 타운은 사람들에게 꽤 알려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옆이 사람들이,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대학로였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필리핀 사람들은 예배를 보고, 길거리에 노점상을 펼처놓고 장사를 하기도 하고, 필리핀이나 필리핀 사람들에 관한 소식을 서로 교환하곤 하기도 했다.

    마찬가지였다.

    몽골 타운도 필리핀 타운과 마찬가지로 주말이면 한국에 나와 있는 몽골 사람들이 모여 장사를 하기도 하고, 서로에 대한 소식을 나누기도 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였다. 필리핀 타운과 다른 것은 몽골 사람들은 예배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몽골 사람들에게는 국교란 게 없었으니까.

    몽골 사람들이 서로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였으므로,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 오르그뜨를 찾는데 가장 적합한 장소는 몽골 타운일는지 몰랐다. 성규의 도망간 아내가 몽골 여자이므로, 그녀에 대한 소식도 그곳에서 떠돌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상당히 고무적인 희망을 갖고, 특히 성규의 경우가 그랬는데, 몽골 타운을 찾은 게 사실이었다.

    몽골 타운은 동대문운동장 옆 광희동에 있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이용해서 거기까지 갔다. 택시를 이용할까도 싶었지만, 막힐 가능성 때문에 접었다. 서울시내에서 서울시내로 이동하는데 가장 빠른 수단은 지하철이었다. 교통체증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것이었다.

    물론 성규의 낡은 트럭이 있었다면, 교통체증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성규의 낡은 트럭을 이용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성규의 낡은 남색 트럭은 이미 없었다. 예산에서 만났던 세 명의 젊은 꽃뱀들이 성규의 낡은 트럭을 훔쳐간 탓이었다.

    훔쳐갔다는 데에 포커스를 맞추면 기분이 나쁘고 당연히 세 명의 꽃뱀을 경찰에 신고해야 하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돈과 지갑과 트럭을 도난당했지만 그 세 명의 꽃뱀들로부터 얻은 것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우리가 잃은 것에 결코 못지않은 것을 그 세 명의 꽃뱀들로부터 얻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하여간 성규의 트럭은 도난당하고 도난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차는 있어야 했다. 차를 도난당하고 나니까 그 필요성이 더욱 절감됐다. 지만이 차가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지만이 차가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한 게 벌써 일주일전이었다. 결국 지만이의 차가 언제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와이프에게 양해를 구하고 와이프의 차라도 가져올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내가 와이프의 차라고 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긴 하지만 주로 와이프가 몰고 다니는 탓이었다.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싶긴 하였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애초에 이 일을 맞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왕 시작한 일인데, 남 일처럼이 아니라 내 일처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서였다.

    혜화동의 필리핀 타운에 가 보면 느끼게 된다. 아니, 단지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알게 된다.

    나는 곧잘 혜화동의 필리핀 타운에를 들르는데, 내가 그곳에 곧잘 들르게 되는 것은 연극을 보러 자주 대학로를 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자주 연극을 보러 대학로를 찾는 것은, 연극평론가 한 분을 아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무료 티켓을 심심할 만 하면 내게 제공해주는 덕분이었다.

    이유야 어떻든, 주말에 혜화동의 필리핀 타운을 찾으면 느끼게 되고, 알게 된다. 서울은 결코 우리 한국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다.

    서울 전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혜화동만큼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이고 현재도 우리가 살고 있는데, 어떻게, 서울이, 혜화동이 우리의 전유물이 아닐 수 있느냐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예수는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존재인 게 분명하다면, 예수의 이 말도 새겨듣는 게 타당한 일일 것이다. 모름지기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느니라.

    동대문운동장 옆, 중구 광희동 몽골 타운에 오니 똑같은 게 느껴졌다. 서울은 결코 우리들 한국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서울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광희동 몽골 거리만큼은 결코 한국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동대문운동장 옆, 광희동 몽골 거리는 분명 우리들 한국 사람들의 것이지만, 몽골 사람들의 것이기도 했다. 몽골 사람들은 우리보다 한참 늦게 새로이 이 곳에 왔지만, 일을 하고 있고, 그것도 우리들이 꺼리는 힘든 일을 골라 하고 있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여기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살고 있듯이 말이다. 혜화동의 필리핀 타운 사람들이 그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몽골 타운에 그만큼, 눈이 부시게 몽골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병원에 가면 세상은 온통 아픈 사람들만 사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몽골 타운에 오니까 세상에는 온통 몽골 사람들 밖에 안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우리, 나와 지만이와 성규가 소수자였고 예외자였고, 이방인이었다. 이 정도 되니까 몽골 타운에 와보고 서울은 결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거지, 몽골 사람 대여섯 명 왔다갔다 한다고 해서, 서울이 몽골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은,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몽골 타운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우리는 흥분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슴에 차오르는 벅찬 희망 때문이었다.

    이 곳에서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희망이었다. 몽골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들고, 어쩌면 그녀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이 곳, 여기에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우리를 엄습해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몽골 사람들 틈새를 헤집고 몽골 타운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 혹시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게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몽골 사람들은 한국인과 별반 생김새에 차이가 없어, 몽골 타운 이곳저곳을 훑고다니는 우리를 기이하거나 특별하게 보지 않았다. 우리는 특별히 부담감 없이 몽골 타운을 훑고다닐 수 있었는데, 그러나 한참을 훑고다녔어도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지는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돌아다니다 우리는 몽골 타운 입구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몽골 만두를 팔고 있는 노점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딱히 몽골 만두를 사먹겠단 생각에서 보다 정보를 얻을까 해서였다.

    몽골 만두 세 개를 사면서 지만이가 상인에게 물었다.

    "혹시 한국말을 할 줄 아십니까?"
    "물론이지요. 한국에서 벌써 육 년째 살고 있는데요. 그러고 보니까 당신들은 한국 사람들이군요. 어쩐지 어슬렁거리는 품이 좀 다르다 싶더니."
    "몽골 사람들 하고 우리가 뭐 다른가요. 생김새도 그게 그거고 다 고만고만한데."

    내가 좀 호기심이 생겨 끼어들었다.

    "많이 다르지요. 생김새야 별 차이가 없지만, 옷차림이라든가 걸음새에서 많이 차이가 나지요. 저희같이 한국에서 오래 산 몽골 사람들은 그 차이를 금세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혹시 맘무한 오르그뜨란 여자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지만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맘무한 오르그뜨? 글쎄요, 내가 알고 있는 여자 중에 맘무한 오르그뜨란 이름을 가진 여자가 있긴 한데, 하지만 워낙에 흔한 이름이라서."

    몽골 상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성규가 품안에서 자기 아내의 사진을 꺼내어 몽골 상인에게 건네었다.

    "이 여잡니다."

    사진을 받아들고 사진 속 성규의 아내를 유심히 살피던 몽골 상인이, 물어왔다.

    "이 여자를 왜, 찾으시는 건데요."
    "제 아낸데...."

    성규가 이렇게 말하려 하는데 지만이가 황급히 성규의 말을 가로막고 끼어들었다.

    "저희 회사의 직원입니다. 헌데, 벌써 일주일째 아무 연락도 없이 무단결근을 하고 있어서요. 연락을 해도 연락이 되지도 않고. 해서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이렇게 찾고 있는 겁니다."

    하면서 지만이 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몽골 상인에게 건네주었다. 몽골 상인이 한글을 읽을 줄 안다면 (주)엑타, 대표이사 김지만 이라고 적혀 있는 지만이의 명함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지만이 성규의 말을 가로막고 이렇게 둘러댄 것은, 생각해보면, 잘 한 일이었다. '도망간 내 아내'라고 했다간 아무래도 몽골 상인이 좋아하지 않을 듯 했다. 몽골 상인은 자기네 나라 여자가 한국인에 돈에 팔려왔다는 안 좋은 상상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글쎄요. 저는 모르는 여자인데요. 한번 타운 안에 들어가 사람들한테 물어보십시오. 이 곳은 한국에 들어온 몽골 사람들이 한번 이상은 꼭 들르는 곳이니까요. 분명히 여자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사진 속 여자가 상당히 미인이고 하니까."
    "진짜 여기에 그 여자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야 장담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몽골 사람을 찾자면, 여기에 오는 건 옳게 찾아온 겁니다. 여기가 저희 몽골 사람들의 정보교환 장소이니까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봅니다만, 그래서 찾아온 거긴 하지만, 워낙에 사람이 많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맘무한 오르그뜨란 여자를 아는 사람을 찾는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야 그렇지요. 그렇다면 인터넷을 이용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겁니다."
    "인터넷이요?"
    "한국에 나와 있는 저희 몽골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가 개설되어 있거든요. 거기다 사진을 올리고 찾으면 웬만하면 아마 직빵으로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희 몽골인들도 한국 사람들만큼이나 인터넷에 아주 열을 내거든요. 적어도 한국에 나와 있는 몽골인들은 그렇습니다."
    "아, 몽골 사람들 커뮤니티가 인터넷에 개설되어 있군요. 그거 아주 반가운 소식인데요.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뭘....아, 저기 저 사람 보이십니까."

    갑자기 몽골 상인이 누군가를 오늘손의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우리는 몽골 상인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눈길을 돌리고, 몽골 상인이 가리키고 있는 사람을 찾았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 때문에 처음에는 몽골상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헛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