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인 10일, 386 운동권 출신인 뉴데일리 독자 이준기씨가 보내온 글입니다>

    87년 여름도 무척이나 더웠다. 그 해 6월 민주화를 국민들의 열정은 철권과 같았던 5공 정권을 녹였고 결국 6.29선언과 대통령 직선제(DJ)라는 선물을 얻어냈다. 그리고 그 뜨거웠던 민주화의 열정의 한 가운데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었다.

    민주화의 허울

    학생신분으로 정권과 맞서 승리했다는 기쁨에 도취된 상황에서 DJ는 일종의 심벌이었다. 70년대 구름같은 군중을 몰고 다녔다는 그의 장충단 공원 연설, 3공에 이어 5공에까지 이어진 그에 대한 견제, 그리고 광주민주화 항쟁의 그림자 등등의 이미지는 그가 정치적 연금상황에서도 국민 관심 속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자산이었다. 6.29 선언을 이끌어 낸 민주화 운동의 전리품 중 하나가 DJ의 정치 복귀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 ▲ 5월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울고 있다. ⓒ 연합뉴스
    ▲ 5월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울고 있다. ⓒ 연합뉴스

    87년 대선에서 소위 ‘비지(비판적 지지론)’을 통해 그의 입장을 옹호했던 많은 이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YS)에 비해 논리적이고 훨씬 더 민주투사에 가까웠던 그가 92년 대선에 실패하고 다시 복귀하고 또 97년 대선에 출마하는 그 ‘말 바꾸기’를 옹호했다. 그가 97년 대선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에 대해 맹목적 사랑을 보냈던 호남 지역 주민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현대사의 질곡이었던 민주화와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가 ‘한 번은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정치적 동정심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또 386에게 DJ의 대통령 당선은  80년 이후 계속됐던 자신들의 믿음과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종의 한풀이였던 셈이다. 물론 IMF라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운도 따라주기는 했지만…

    돌아오지 말았어야 할 DJ

    재임기간 중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그는 임기말 쓸쓸이 퇴장해야 했다. 아들들을 포함 친인척 비리로 얼룩진 그의 모습에서 민주화투사라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고, 노벨평화상에 대한 국민적 존경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권력은 으레 그려러니…’ 하는 국민 체념 속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가 돌아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자살을 두고 노회한 정객이 힘을 내고 있는 것이다. DJ 주장의 핵심은 현 상황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위기이며 행동하는 양심만이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DJ에게 묻고 싶다. 지금이 진정으로 민주주의 위기인지... 어찌됐건 우리는 합법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권력을 선출했다. 그가 스타로 활동했던 그 시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대통령 이름 석자만 언급해도 자칫 잘못될 것 같던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그 자신이나 국민에게 비극이지만, 그것이 비민주적 독재권력에 의해 비롯됐다는 것 역시 억지다. 노 전 대통령이 측근 비리에 연루돼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 책임은 노 전 대통령에게 있고,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 역시 그의 몫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독재 Vs 민주라는 자신이 가장 유리한 구도로만 해석하려는 DJ의 모습에서 전직 대통령의 품위나 논리정연한 정치적 주장 등을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현역 정치인 시절 자신이 항상 지역감정 같은 편가르기 희생양이라고 주장해왔다. 다시 DJ에게 묻고 싶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야말로 또 다른 편가르기가 아닌지 국민을 또다시 분열과 대립의 고통 속으로 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또 그가 말하는 남북관계 위기가 국민 책임인가. 주민들은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고 있는데 막대한 돈을 들여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만이,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손자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북한 정권만이 옳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 자신이 이룬 유일한 업적인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이 이대로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마지막 몸부림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에게 정치적 동정심과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386에게 노정객의 시대회귀적인 모습이야말로 또 다른 절망과 분노다. 그의 주장은 억지고 궤변이다. 그는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들의 슬픔

    오늘이 노 전 대통령 49재날이다. DJ의 어설픈 정치적 컴백을 보면서 슬픈 생각이 든다. 왜 우리는 존경할 만한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을 갖지 못하는지 말이다. 386을 포함한 우리 국민은 이제 DJ가 생각하는 정도의 낮은 수준이 아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지만 너무나 합리적이며 너무나 세계적이며 너무나 상식적이다.

    후배 정치인의 죽음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활용하는 듯한 DJ 모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시대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만의 희망을 민주화라는 과거 영광으로 포장하려는 그의 모습에서 측은함마저 느낀다. 이제 본래 위치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전직 대통령의 기품을 유지하면서 단 한명의 국민에게만이라도 희망을 주는 데 힘쓰기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DJ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