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주의 몽골문화촌을 다녀온 우리는 곧 자동차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사람을 찾는다는 건 기동성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기동성을 확보하자면 무엇보다도 차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중에 차를 갖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집에 차가 있었지만, 와이프가 끌고 있었다. 차가 필요하니 당분간 내가 차를 쓰겠다고 할 수는 있었지만,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는데 내가 그 정도로까지 서비스를 해야 하느냐는 사실 의문이었다. 게다가 와이프가 흔쾌히 차를 내어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와이프의 성깔에 이런 일에 차를 쓰겠다고 하면 벌컥 화를 내며 결코 차를 내어 줄 수 없다고 버틸 게 십중팔구였다.

    성규에게 차가 있긴 했다. 그러나 장소가 문제였다. 성규의 차는 청양 시골집에 있었다. 게다가 다 낡은 남루한 트럭이었다. 성규의 트럭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시골까지 내려가 트럭을 갖고 올라와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가 그만큼 한가하거나 여유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규의 낡은 남색 트럭이 정말이지 낡아 너무 느리게 달린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느리게 달리는 성규의 낡은 트럭이라면 기동성을 요하는 사람 찾는 일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였고, 그러느니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었다.

    지만이에게는 차가 없었다. 한 달전까지 차가 있긴 했다. 그러나 그건 헌 차였다. 새 차를 뽑으면서 헌 차는 폐기처분했고, 새 차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주문한 새 차가 언제 나오느냐고 문의를 했는데, 일주일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좀 어떻게 빨리 안되느냐고 급히 쓸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라고 해 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 일주일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만이의 새 차를 기다리며 마냥 일주일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러기에는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는 일이 너무 촉박하고 바빴다.

    나와 지만이와 성규는 머리를 맞대고 숙의를 해 보았지만, 뾰족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차가 필요하다는 건 분명한데, 지금 현재 차를 구할 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결국 숙의에 숙의를 거듭하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현실적으로 지금 차를 구할 방도는, 청양 시골집에 있는 성규의 낡은 트럭을 가지고 오늘 길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시골에 내려갔다 올라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성규의 낡은 트럭이 기동성이 부족하다는 난점이 있긴 하였지만, 그거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결론이었다.

    결론이 그렇게 되었으므로 우리는 당장 성규의 낡은 트럭이 있는 청양 시골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우리는 남부터미널로 가 열 두시 이십 분 예산행 직행버스를 끊었다. 성규의 낡은 남색 트럭이 있는 시골집까지 가려면 예산까지 가서 거기서 택시나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제일 빨랐다. 택시라면 한 십여분 버스라면 한 이십여분쯤 신양을 거쳐 청양방면으로 더 들어가면 되었다.

    직행버스는 예정된 열 두시 이십 분에서 사분 늦게 출발했다. 우리가 탄 예산행 직행버스가 왜 사분 늦게 출발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운전사의 시계가 사 분 늦게 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내 시계가 사 분 빨리 간 탓일 수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닌데 그냥 늦게 출발한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시간관념에 철저하지 못한 한국 사람들의 시간관이 반영된 일일 수도 있었다. 하여간 사 분 정도 출발시간이 늦어졌다고 해서 크게 문제삼을 일은 아니었다. 도로에서 사 분 더 빨리 달리면 되는 거니까.

    모처럼 가는 시골집이었다. 한 십여년만에 가는 길이었던가. 성규의 낡은 남색 트럭이 있는 시골은 사실 나의 고향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본적이 그곳으로 되어 있었으므로 성규의 낡은 남색 트럭이 있는 그곳이 나의 고향인 셈이었다.

    어려서는 아주 자주 찾은 시골집이었었다.

    명절때는 물론 방학만 되면 찾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우리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기를 좋아하셨던 때문이었다.

    시골집을 찾는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자 마음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예 척을 지고 살게 되었다고 해도 좋은 만큼 시골집은 찾지 않았었다. 찾지 않았었다기 보다, 찾지 못했었다. 자연스레 그리 된 것이지만, 거기에 심정적 원인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만도 없는 게 사실이긴 했다.

    글을 쓴다는 걸 시골 사람들은 인생에서의 낙오로 보고 글을 쓰는 사람은 인생 실패자로 간주한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시골 사람들은 문학에 대해 무지했다. 모든 시골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모든 시골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하면, 시골 사람들을 심각하게 모욕하는 일이 될 터였다. 그러나 다른 시골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내 고향 시골 사람들은 영락없이 그와같았다.

    시골집 사람들이 나를 그와같이 보는데, 시골집에 갈 마음이 생기거나 생기더라도 내킬 리가 없었다. 지난 봄 성규의 결혼식에마저 안 간 것도 그 영향이 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성규 역시 나를 그렇게, 시골집 사람들이 나를 보듯이 보고 있었으니까.

    성규가 나를 우습게 본다는 걸 감안하면 내가 지금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기 위해 동원되어 성규를 돕고 있다는 건, 베알이 꼴리는 일이었다. 내가 사람이 너무 좋은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었다. 성규의 불행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게 논리적이고, 합당하고, 인과응보였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논리적으로만 살 수 있는가. 살다보면 비논리적이 되기도 하고, 싫은 일도 하여야 하고, 전혀 엉뚱한 일에 발을 들여놓기도 하여야 하는 그게 인생 아니겠는가. 인생은 예측하기 어렵고, 똑 부러진 정답을 제시하기 어려운 과정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인생이 논리와는 완전 동떨어진 어떤 것이라는 얘기는 또 결코 아니다.

    버스가 우리를 예산에 내려놓은 것은 오후 두 시쯤이었다. 남부터미널에서 예산까지 대강 한시간 반이 조금 더 걸린 셈이었다. 미아리에서 남양주의 몽골문화촌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도 이와 비슷했었다. 이렇게 보면 거리와 시간이 비례한다는 것은 꼭 맞는 얘기만은 아니었다. 거리가 멀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거리가 짧으면 시간이 적게 소요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였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원리가 작동하는 현대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거나 만만하거나 간단한 게 아니었다.

    예산에 도착한 우리는 지체없이 택시를 집어타고 성규의 낡은 남색 트럭이 기다리고 있는 시골집을 향했다. 택시는 달렸고, 십여 분쯤 후에 우리는 성규의 낡은 남색 트럭이 있는 시골집에 도착했다.

    나는 성규의 부모, 사촌형과 아주머니를 만나볼 생각이 없었다. 나는 시골집을 찾아왔지만, 사실 시골집을 찾은 게 아니었다. 성규의 낡은 남색 트럭을 찾아왔을 뿐이었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시골집의 밖이었고, 시골집은 나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나는 결코 사촌형과 아주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성규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규 역시 사촌형과 아주머니, 그러니까 자기 부모를 만나볼 눈치가 아니었다. 성규는 자신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자신은 부재중'인 상태로, 사람들에게 남아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성규는 아직 도망간 아내를 못찾고 있었고, 집으로 돌아온 게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낡은 남색 트럭을 가지러 가기 위해 잠시 들른 데에 불과한 거니까.

    우리는 성규의 낡은 남색 트럭이 있는 소 외양간 뒤 작은 공터로 갔고, 트럭에 올라타고는, 곧바로 마을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시골집에 머문 시간은 채 오분도 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와 마주친 마을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잘 된 일이었다. 마을사람 누구든 마주쳤다면, 시간을 지체했을 테고 몹시 번거롭고 껄끄러웠을 일이었다.

    성규의 낡은 트럭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잘 달렸다. 괜찮았다. 약간 무리라는 느낌이 들긴 했어도 최고속도 120킬로까지 가능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도 가능했다. 자신의 능력 이상을 보여주어야 할 때 말이다. 이런 경우란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살다보면 그런 일도 간혹 생기곤 하는 것이다. 인생이 도약하느냐 몰락하느냐는 대체로 이런 순간에 결정이 난다고 할 수 있다.

    헌데, 성규의 낡은 남색 트럭을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도중에 예기치않은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서울로 올라오는 도중의 중간쯤이나 막판쯤이 아니라 거의 초반쯤에서 생긴 일이었다.

    오후 세 시가 가까워오도록 아직 점심식사 전이어서 트럭을 몰고 예산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는 음식점부터 찾았다. 이대로 차를 세우지 말고 서울까지 올라가버리자는 의견도 없지 않았지만, 허기진 창자가 그 의견을 일축했다. 마침 장터 소머리국밥집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고, 우리는 그 앞에 차를 세웠다.

    우리가 소머리국밥집으로 가기 위해 트럭에서 내렸을 때였다.

    은은한 노래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은은한 그 노래소리는, 그러나 단지 은은한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장엄하고 몹시 아름답기까지 했다.

    노래소리야 거의 날마다, 리디오다 텔레비전이다 심지어는 핸드폰 벨소리로까지 듣는 터였으므로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이었지만, 헌데, 문득 호기심이 생기고 말았다. 누가 부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는 것이었다. 노래소리가 은은하고 장엄하며 몹시 아름답기까지 해서가 아니었다. 그 노래소리가 꼭 우리를 위해, 우리를 위해서만 들려주는 노래소리처럼 들려오는 까닭이었다. 나만이 그렇게 느꼈던 게 아니었다. 성규도 지만이도 다 그와같이 느끼고 있었다.

    순간 우리는 점식을 먹어야한다는 생각을 잊고 있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을 잠시 멈추고 트럭을 세우고 식사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던 허기진 창자가 자신의 요구를 잊고 있었다.

    우리는 점심식사도 잊은 채 그 은은하고 장엄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노래소리를 향해, 노래소리의 주인을 찾아 나아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들 자신도 모르게 그와같이 하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한 십여미터쯤 내려가자, 왼쪽으로 갈리는 길이 나타났다.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자, 한 십여보쯤 걸었을까 아담한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노래소리는 그 공터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공터의 중심에 둥근 큰호박을 몇 개 쌓아놓은 것 같은 분수대가 있었고, 그 분수대와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오는 물을 배경으로 해서 어깨까지 오는 긴 생머리의 세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카펠라였다. 세 여자 누구도 악기가 없었고, 악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악기없이 목소리만으로 저렇게 은은하고 장엄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도무지 신기하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다.

    사실 그것은 천상의 노래소리였다. 우리는 그 순간 그렇게 듣고 있었다. 아니, 성규와 지만이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와같이 듣고 있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그 노래소리에 빠져들었고, 몰입하고 있었다.

    어깨까지 오는 긴 생머리의 세 여자의 노래소리를 듣는 우리는 그지없이 행복했고, 그지없이 행복한 나머지 황홀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배고픈 것도 잊었다, 급히 서울로 올라가봐야 한다는 것도 잊었다, 도망간 성규의 몽골 아내를 찾아야 하는 우리에게 이런 노래는 사치라는 생각도 잊었다. 그 순간 우리는 무아지경이었다.

    노래가 끝났을 때 우리는 열렬히 박수를 쳤다. 행복한 나머지, 그랬다. 우리는 긴 생머리의 세 여자의 노래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우리는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무슨 댓가를 치르어도 아깝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긴 생머리의 세 여자의 노래소리를 다시 들을 수는 없었다. 천상의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뿐이고, 그것도 평생 일어날까 말까한 행운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 한 번의 행운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긴 생머리의 여자 중 리더격으로 보이는 여자가 우리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우리들에게 말했다.

    "덕산까지 트럭을 좀 태워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트럭을 타고 왔는지 어떻게 여자가 알고 그런 부탁을 하는지, 당연한 의문이었으나 의문이 떠오르지 않았고 문제삼지 않았다. 우리는 무조건, 그리고 흔쾌히, 여자의 부탁을 수락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천상의 노래소리를 들었고, 한 순간 그지없이 행복하였으므로,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덕산이 우리가 가는 방향과는 반대 방향이라는 생각같은 것은 떠오르지조차 않았다. 아니, 떠오르긴 하였으나 그게 여자의 부탁을 수락하는데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까짓 거, 좀 늦어지면 어떠냐는 거였다. 서울에 반겨주는 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좀 그러면 어떠냐는 거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성규와 지만이의 생각이 모두 같았다.'

    "그럼요."

    성규의 낡은 트럭은 크지 않아 차 안에 여섯명이 다 탈 수는 없었다. 해서 운전 때문에 성규는 차안에 남고 나와 지만이 트럭의 짐칸으로 가고 여자 둘은 차 안 운전석의 옆자리에 태우고, 남는 여자 하나는 나와 지만이와 함께 트럭의 짐칸에 탔다. 여자들은 모두 자기들이 짐칸에 타고, 그래도 상관없다 하였지만, 우리들이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