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 뉴데일리
    ▲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 뉴데일리

    여야간 미디어법 합의사항이 여론조사 채택 문제로 전면 무효화 됐다. 민주당 문방위 간사인 전병헌 의원은 며칠 전 라디오에 출연, “미디어법 표결 전 대전제인 국민 여론 수렴 절차가 한나라당 추천 위원 측 방해로 진행되지 못했다”면서 여야 합의 무효화를 주장했고, 한나라당 간사 나경원 의원은 “여론조사를 하는 것이 반드시 여론 수렴 절차라고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정책 결정을 위한 보조적 자료로서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미디어법 개정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 는 것에는 반대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여론조사로 주요 국가정책을 결정하자는 여론조사 만능주의가 위험할 수 있다는 몇 가지 경험적 사례를 들었다.

    이 대표는 첫째로 “여론조사에 의한 정책 결정이 항상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이기적 본성과 관련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07년 9월 님비현상과 관련된 여론조사를 예로 들었다. 조사 결과 다수의 국민이 자기가 사는 지역에 화장장 등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이 대표는 “만일 여야 합의를 통해 화장장 등 혐오시설을 여론조사를 해서 가장 반대가 적은 지역에 건립한다고 하면, 해당 지역 주민들이 혐오시설 유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즉 님비현상과 같이 본능적으로 반대의견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안과 관련해서는 여론조사로 도입여부를 결정한다는 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로 이 대표는 “주요정책 결정과정에 있어서 전문가의 견해가 필요한 경우, 일반 국민의 의견 보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05년 말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혐의 사건과 관련, 여론조사 결과, ‘황 교수에게 연구기회를 다시 줘야한다’는 의견이 80%로 압도적이었다”며 “당시 전문가 조사위원회가 아니라 일반 여론조사에 의해 사건이 결론지어졌더라면 황 교수는 서울대에 복직해 연구를 재개했을 것”이라고 예를 들었다.

    이 대표는 “미디어법 개정이 바로 이러한 경우”라며 “대다수 국민들이 줄기세포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처럼 미디어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전공자이거나 무관심한 대다수 국민들 미디어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할 텐데, 전문가 위원회에서 결론 내리지 못했다고 일반 국민 1000명에게 이분법적으로 찬반 의견을 미디어법 개정 여부를 사실상 결정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의 논리는 마치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의견이 동률로 나왔다고 해서 여론조사로 최종 결정을 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하기 위해 위원회가 구성됐을 때에도 대의 민주주의 회의론이 있었는데, 전문가 위원회도 모자라 결국 국민 여론으로 미디어법 개정 여부를 결정한다면, 국회의원 스스로 대의 민주주의와 입법부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공직자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주요 참고 지표로 여론조사를 활용할 수 있지만 여론조사 개입은 거기까지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그들이 해야 할 의사결정 과정을 여론조사로 대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