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조직이 커질수록 의사소통 구조가 단절돼 갔습니다."

    `촌지 안받기 운동' 등 이른바 참교육 운동을 표방하며 학생과 학부모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냈던 전교조 1세대들은 26일 연합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전교조가 현재의 위기상황에 빠지게 된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인터뷰에는 김민곤(56. 서울고교) 전 부위원장과 이영규(50. 왕길초교) 전 인천지부장 등 2명의 창립 회원이 참여했다.

    전교조의 산증인인 김 교사는 2007년부터 전교조 기관지에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를 연재하고 있고, 이 교사는 20년간 인천지역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두 교사는 우선 전교조 출범 이전의 상황에 대해 "선배들은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해야 한다는 패배주의에 젖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전교조 결성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 계기도 "아이들 앞에 서는 교육자로서 그런 현실을 결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학교운영위원회 등 민주적 논의 구조가 제도화되고,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드는 등 학교가 민주화하기까지 초창기 전교조 조직원들의 활동은 그야말로 헌신적이었다고 했다.

    그 덕분인지 전교조는 10년간 `법외 노조'의 굴레를 짊어지고 가면서도 나름의 성과를 거뒀고, 국민의 다수를 전교조 편으로 끌어들였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갈수록 조직 규모가 급속도로 커져 마침내 1999년에는 그토록 염원하던 합법화도 이뤄냈지만, 아쉽게도 초창기의 자유롭고 끈끈했던 의사소통 구조가 약화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김 교사는 이를 `비만'에 비유하며 "초기의 양심적 교사들의 참교육 정신이 충분히 공유되는 과정도 없이 외형만 성장했다"며 "새로운 조직원과 초기 활동가들 요구 사이에 괴리감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교사도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큰 틀에서는 같았지만 큰 이슈들이 계속 터져 거기에 매달리다 보니 작은 부분(조직원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서는 미처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게다가 그런 과정에서 특정 정파 간 갈등 조짐까지 나타나는 등 불협화음이 커졌고, 시대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서 조직원들 사이의 결속감은 더욱 약해졌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김 교사는 "학부모, 학생의 개인적 욕망과 `참교육'이라는 전교조의 당위적 요구 사이에 간극도 생겨났는데, `보폭'을 줄여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 교사도 같은 맥락에서 "원칙과 명분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학부모 대중과 함께한다는 부분에서는 소홀했다"고 시인했다.

    두 창립회원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의사를 밝히면서도 조직이 계속 발전해 나가려면 기존의 투쟁일변도 정책과 경직된 조직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김 교사는 "거리에 나가 피켓을 드는 것으로는 정부정책을 바꿀 수 없다"며 "학교현장에서 교사, 학생들을 만나 참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를 자료화하고 공론화하는 작업이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최근 경쟁을 우선시하는 정부 정책으로 전교조가 쌓아올린 노력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 같아 씁쓸하지만, 조직은 출범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그때의 자세로 새 틀을 짜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