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관련법을 100일간 논의할 '사회적 논의기구'는 이 법의 발목을 잡을 뜨거운 감자다.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는 그간 민주당이 요구하던 협상 카드였다.

    미디어법을 두고 여야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1일 새벽 김형오 국회의장은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중재안을 제시했는데 이때 김 의장은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를 포함시켰다. 사실상 의장이 제안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당초 한나라당은 이 기구 설치를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내키지 않았음에도 결국 수용하게 된 이유는 일단 파국을 면해보자는 현실적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같은 선택이 도리어 미디어법 처리에 있어서 다시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고, 이번 여야 합의가 '여론 수렴'과 '입법'이라는 국회 본연의 책무를 저버렸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사람이 대법관을 지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다. 이 총재는 3일 뉴데일리와 만난 자리에서 "국회에서의 입법활동을 외부에 맡기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회적 논의기구의 성격이 당초 알려진 '합의기구'가 아닌 '자문기구'로 바뀐 데 대해선 다행이란 입장을 내놨다. 이 총재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처음) 사회적 합의기구로 할 것처럼 했는데 자문기구로 한다고 했으니..."라며 기구의 역할과 성격이 바뀐 부분에 대해선 다행이라 평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재는 "자문기구로 한다면 문제는 없지만 구태어 자문기구를 만들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 총재는 "상임위에서 공청회도 열 수 있고 전문가들을 불러 의견을 얼마든 들을 수 있는데..."라며 "어쨌든 자문기구도 반기진 않는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이보다 앞선 2일 당 회의에서는 더 강경한 발언을 쏟았다. 이 총재는 이 회의에서 "미디어법에 관해서 사회적 논의기구의 협의를 거쳐 한다는 합의가 된 것으로 보도됐는데 나는 도대체 이 분들이, 그 모임을 주재한 국회의장을 포함해 국회의원들이 혼을 가진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고 개탄했다.

    "국민은 국회의원에게 국회에서 일을 하라고 뽑아서 보냈고 가장 핵심적인 일은 입법활동인데 입법활동의 핵심 일을 외부인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에 맡겨놓는다면 국회의원은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게 이 총재의 비판이다. 이 총재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고 요구하고 싶다"고 까지 말했다.

    김 의장에 대해선 "더구나 이번 합의가 국회의장이 주재한 협상 모임에서 나왔다는 데 참으로 기가 막히다"며 "입법부의 수장이 국회 입법의 책무를 포기하는 일을 주재했다면 이것은 입법부 수장의 자질이 없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를 수용한 한나라당에 대해선 "보수는 가야 할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이러한 길을 가지 못하고 마치 두뇌가 없는 공룡처럼 방향 감각없이 흔들린다면 한나라당은 보수의 수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이런 이 총재의 비판이 맞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날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와 관련, "이건 이 총재의 말이 맞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여야가 합의 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단순한 자문기구'라고 하고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합의기구'라고 얘기하는 것만 봐도 이 기구가 정치적 편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이번에 여야 합의과정을 보면 국회의원이 299명이나 필요없다는 게 증명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총재는 국회의원 정수를 30% 줄이자고 하는데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등 10여명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미디어 관련법에 대하 여야의 합의에 대해서도 "파국을 살짝 모면하기 위한 편의적인 조치"라며 "얄팍한 정치편의주의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선진당은 여야가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를 합의한 만큼 적극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겠다는 입장으로 정리했다. 권선택 원내대표는 이날 뉴데일리와 만나 "맘에는 안들지만 여야가 합의했으니 (선진당 몫의) 외부인사를 추천해 적극 의견을 개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