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설은 경제불황에 연휴 첫날인 24일부터 쏟아진 폭설로 귀성을 아예 포기하거나 다음에 고향을 찾기로 미루는 이들이 유독 많았다. 

    매년 설과 추석마다 꼬박꼬박 고향 광주에 모였던 의사 최모(54)씨의 형제들은 이번 설에는 어머니를 `역귀성'하도록 했다.

    호남지방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본 형제들의 마음이 통해 서울에 사는 최씨 집에서 차례를 지내기로 한 것. 

    대신 전남 나주로 성묘를 다녀오는 일은 유일하게 고향에 사는 막내가 맡았다.

    최씨는 27일 "예전에 눈이 많이 와서 내려가는 시간도 2∼3배 걸리고 사고가 날 뻔 하는 등 고생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어머니 혼자 기차를 타고 오시는 게 서로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회사원 윤모(30)씨는 명절마다 20여명의 친척들과 함께 충남 서천의 큰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지만 이번 설 연휴는 상대적으로 조촐하게 보냈다.

    폭설로 귀성을 포기한 이도 있고 회사일로 내려오지 못한 이도 있어 평소 명절 인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명만 모였기 때문.

    경북 안동이 고향인 김모(43)씨 가족도 귀성길 교통이 마비되는 바람에 고향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대신 친척에게 선물만 택배로 보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연휴 내내 기승을 부린 동장군의 위력으로 수도관이 동파돼 김씨 가족은 집에 있는 것도 포기하고 인근 찜질방에서 1박2일간 먹고 자며 피로를 풀어야 했다.

    실제로 김씨 가족처럼 연휴를 찜질방에서 보내는 가족도 많아 목동의 한 찜질방 주인 이모(54.여)씨는 "올해는 연휴 기간이 짧고 폭설 등으로 귀성길이 험난해서 그런지 가족 단위로 와서 장시간 머무는 손님들이 유난히 많았다"고 전했다.

    설의 넉넉한 인심과 세뱃돈도 경제 불황의 여파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회사원 방모(31)씨는 회사에서 주는 설 상여금이 줄어든 탓에 부득이하게 부모님과 조카들에게 주는 용돈 규모를 줄여야 했다.

    방씨는 "작년에는 아버지, 어머니께 각각 20만원 드렸는데 올해는 절반으로 줄였다"며 "7명이나 되는 조카들에게 줄 세뱃돈도 무시못할 액수라 작년에는 3만∼5만원씩 줬는데 올해는 중학생 3만원, 초등학생 이하 2만원으로 줄였다"고 했다.

    은행원 전모(28)씨는 "회사에서 비용 절감한다며 연휴 앞뒤로 연차를 붙여 쓰도록 장려했고 설 선물도 규모를 줄여서 주더라"라고 소개했다.

    매년 함께 모여 차례 음식을 풍족하게 준비했던 주부 김모(54.여)씨 가족도 이번에는 각자 음식을 나눠 맡고 먹을만큼만 준비했다. 아이들에게 주는 세뱃돈도 생략하다시피했다.

    주머니 사정은 어려워졌지만 가족간 우애는 오히려 돈독해지기도 했다. 

    이모(53)씨는 막내동생 가족과 함께 자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고향인 충북 제천에 다녀왔다.

    이씨는 "예전엔 자동차가 일종의 부와 성공의 상징이라 각자 승용차를 끌고 갔지만 올해는 기름값이라도 아끼려 귀성길 `카풀'을 했다"며 "평소 자주 보지 못하는 동생네와 이런 저런 사는 얘기도 나눌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