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의 질서.

    지난해 연말부터 새해 벽두까지 살벌하게 전개된 이른바 '입법전쟁'이 끝난 뒤 어수선한 여권에 던져진 화두다.

    그 정도면 선전한 것인지, 아니면 전멸한 것인지는 시각에 따라 엇갈리지만 적어도 당초 한나라당 원내지도부가 공언했던 '연말까지 쟁점법안 처리'라는 속도전에 실패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내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살짝 비틀어서 보면 결국 권력을 쥔 여권 내부의 질서가 정리되지 못한 것이다. 집권 1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여권의 체제정비가 과제가 되고 있다.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지만 한나라당과 여권에 현재 '태양이 하나'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태양과 보름달이 같이 떠있는 형국이라는 말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이 화학적 결합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질서가 없기는 '친이계(친 이명박계)'가 심각하다. 실질적인 집권세력인 이들 내부에 이른바 1인자(이 대통령)를 떠 받드는 중심세력이 누구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킹 메이커'였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여권의 2인자'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이국만리에서 '유랑'중이고, 당 대표나 원내대표의 얼굴을 떠올려도 중심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 오히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영향력이 더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입법전쟁이 끝난 뒤 당내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권의 소통부재'를 개탄했다. "소통이라는 것은 국회의장과 한나라당간의 소통도 있지만, 한나라당 내부의 소통, 한나라당과 청와대간의 소통, 한나라당과 정부의 소통 등을 말하는 것이며, 이런 범여권 내부의 소통에 총괄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것. 

    정몽준 최고위원의 지적은 더 직설적이다. 그는 8일 최고위원회에서 "언론은 한나라당의 모습에 대해 지리멸렬이라고 평가하지만 내가 보기엔 전멸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두나라당, 웰빙정당이라는 근본적인 체질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반성이 어떤 방식으로 실천될 것이냐다. 돌아가는 것을 잘 살펴보면 아무래도 곡절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각 계파간 해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입법전쟁에서 실패했다며 홍준표 원내대표의 퇴진을 제기했던 `이재오계'의 목소리는 "강력한 구심력이 없어 소수 야당의 '저항'에 굴복한 만큼 이제 강력한 대오를 짤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아우성이다. 

    하지만 같은 '친이계'에 속해있더라도 'MB직계'의 생각은 다르다. 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하도록 하는데 힘을 모아야한다는 데 마음을 쓰고 있는 이들에게 '힘센 2인자'의 등장이 달가울 수 없다.

    친박계는 "도대체 저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냉소적인 시각을 보내면서도 '그래도 이재오와의 싸움은 피하는게 낫지 않을까'하는 계산 속에 일단 `홍준표 구하기'에 동조한 양상이다.

    정국에 대한 인식과 해법이 다른 한나라당 각 계파는 당의 정비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권력투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행보가 주목된다. 그 자신도 인터넷 팬 클럽에 게재한 동영상을 통해 "새해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여러분 곁으로 갈 준비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전거 대신 자동차'를 몰고 정치판에 뛰어들 이 전 최고위원의 동선(動線)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그만큼 파장이 클 것이라는 반증이다.

    2월 이후 정국은 4월 재.보선을 시작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와 한나라당 전당대회까지 이어지게 된다. 고비고비마다 계파간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그림을 연상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당장 당의 구심점에 서겠다는 이재오계와 이를 막으려는 현 지도부와 이상득 의원 세력간에 암투가 벌어질 수 있고, 친박계가 가세할 가능성이 크다.

    자칫 2차 입법전쟁을 앞두고 적전분열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여권의 정국 주도권 상실이라는 '공멸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한나라당 내홍을 견제하는 국면도 예상할 수 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이 전제돼야 '박근혜의 다음 승부'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친박계가 '올해까지는 현 정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조용히 지켜볼' 가능성도 크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맞아 '일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자는 논리가 대세를 형성하면 그만큼 당내 계파간 갈등을 억제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한나라당 각 계파가 어떤 선택을 할지, 그로 인해 조성된 새로운 질서가 정국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지가 판가름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