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6일 사설 '박근혜 전 대표의 지당한 이야기의 뒷맛'입니다. 네티즌의 토론과 사색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5일 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 참석해 "한나라당이 국가 발전을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면서 내놓은 법안들이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는 점이 굉장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법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민 통합을 위해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라며 "다수당으로서 국민 앞에 큰 그림, 큰 모습을 보여야 하며 그렇게 노력할 때 국민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이 한나라당의 협상제의나 대화를 거부하고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라고도 했다. 현실의 진흙탕 정치를 이미 벗어버린 국가의 원로(元老), 세속의 이해 다툼을 멀리 초월한 종교지도자의 냄새가 물씬 나는 지당(至當)한 이야기다.

    박 전 대표가 이 회의에 참석한 것은 지난 7월 말 이 회의체가 처음 발족했을 때다. 그런 박 전 대표가 5개월여 만에 이례적으로 당 회의에 참석해 겉으로 보면 여야를 모두 탓하는 양비론(兩非論)에 가깝지만 사실은 자신의 마음속 저울은 한나라당이 더 문제라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85개 쟁점법안 처리에 실패한 것으로 판명된 이날 '지도부 책임론'을 놓고 시끄럽다. 이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나선 것이다. 파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가 워낙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던진 말이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조금 헷갈리기도 한다. 우선 "한나라당이 내놓은 법안이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준다"고 한 말이 그렇다. 85개 쟁점 법안 전체가 그렇다는 것인지, 이 중 일부 법안이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 무리가 있었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정치권에선 전부터 박 전 대표가 경제적 불안과 고통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국민을 두고 여야가 극한대치를 벌이는 쟁점 법안과 상황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휘하의 의원 숫자가 한나라당 전체 의석의 2분의 1에 육박하고 그 의원들이 공사(公私) 간에 박 전 대표의 다음 대선 도전을 당연시하는 발언과 행동을 하고 있는 분위기라면 박 전 대표도 자기 견해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도리라는 이야기다. 박 전 대표가 이날 입을 열었다지만 그 발언만 봐서는 그게 무슨 뜻인지 헤아릴 길이 없다.

    박 전 대표 측은 논란이 커지자 "일반론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을 양분(兩分)한 집권당 최대 계파를 이끄는 현실 정치인이지 국가 원로도 종교 지도자도 아니다. 박 전 대표는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명쾌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