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폭력방지법 시행 10주년을 맞아 법과 제도, 여성운동의 성과를 살펴보고 그 과제는 무엇인지 모색해 보는 포럼이 지난달 28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렸다.

    (사)한국여성의전화연합 주최로 열린 이날 포럼은 ‘가정폭력 추방운동, 성과와 과제, 미래를 말한다’는 주제로 전문가들의 발제와 종합토론으로 진행됐다.

    서울여성의전화 정춘숙 회장은 일상적인 아내폭력 문제를 사회 문제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아내폭력을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 힘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구조적 문제로 보고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운동을 통해 ‘아내폭력’을 발생·유지시키는 법질서, 관행, 사회 구조 변화를 요구해왔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이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에 대해 국가 책임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나 가족구성원의 인권보호 측면이 드러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서강대 법대 이호중 교수는 과거 부부싸움 정도의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었던 가정폭력을 명백한 범죄행위로 인식하고 국가 사법체계 및 사회공동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공적 문제로 선언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법 체계가 가정폭력 근절과 피해자 인권보호라는 법 제정 근본취지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지난 10년간 법적용 실태를 조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가정폭력에 대한 효과적 개입과 근절은 엄격한 처벌정책만으로 달성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가정폭력법 제정 10년을 전환점으로 삼아 가정폭력에 대한 형사법의 대응목표를 보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며 “폭력 종식이란 목표는 가해자에 대한 적정한 형사처벌과 더불어 피해자 보호시스템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사법시스템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정책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가능해진다”고 제시했다.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박영란 교수는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여성주의 프로그램 개발 및 서비스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피해 여성들의 변화하는 욕구에 대응하기 위한 자립자활 지원정책 확대가 요구되므로 지역사회 자원을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정폭력사범의 폭력유형(2002-2006)

    토론자로 나선 김홍미리 활동가는 “가정폭력방지법 시행으로 여성들이 맞지 않을 권리를 알아가고 있다”며 이를 ‘폭력관계에 대한 저항 움직임’으로 바라봤다. 그는 그러나 피해자지원 및 가해자 처벌 통로를 열어 놓았지만, 가정보호의 관점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폭력관계 근절의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여성의전화 박신연숙 지역조직국장은 “폭력은 피해생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지역공동체 전체의 문제”라며 “이는 여성단체나 상담소 힘으로 해결될 수 없고, 지역사회가 가정폭력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지역공동체 차원의 대응 운동을 활발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변화순 선임연구위원은 국제기구와 선진사회의 가정폭력추방운동 동향을 발표했다. 유엔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세계적으로 심각하고 만연하다고 평가했다. 그 증거로 여성폭력에 관해 71개국에 실시했던 설문조사에서 물리적, 성적, 정신적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세계적으로 평균 3명당 1명은 자신의 일생 중 최소 한 번 이상 배우자에 의한 물리적 폭력을 겪는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 “법적, 정책적 구조가 잘 짜여있다 해도 여성폭력은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고, 인권과 성 평등의 장애요소가 만연해 있다”고 국제동향을 전하며 “102개 국가가 법적으로 가정폭력에 관한 구체적 조항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많은 국가는 가정폭력, 부부 성폭력, 근친상간, 성희롱, 전통적 여성학대를 법제화 하지않고 있어 보다 넓은 법과 정책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