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1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KBS 2TV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인 에티오피아 출신 여교수 메자 이쉬투씨가 지난 18일 방송에서 "한국에 처음 와 어느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가 '흑인이야? 흑인은 안 돼요'라는 말을 들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국에 온 지 4년 반이 된 메자씨는 작년 9월부터 모 대학 경영정보학부 전임강사로 강의하고 있다. 메자씨는 "한국에선 나한테 '흑인인데 어떻게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느냐'는 말들을 한다. 한국은 너무 심하다"고 했다. 그녀가 한국말을 못하는 자기 동포를 대신해서 공장 사장을 만났더니 "흑인에겐 아시아인에게 주는 월급보다 많이 깎아서 준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호주 출신 커스티씨도 "한국 사람들은 흑인이 영어 선생님이면 그 수업 안 다닌다"고 한국인의 인종차별을 문제 삼았다.

    우리도 못 먹고 못 살던 무렵, 외국에 일하러 나가 차별의 서러움을 삼켰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우리가 이제 사는 형편이 나아졌다고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 사람, 우리와 다른 피부색을 갖고 있는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때 사망자 40명 가운데도 외국인 노동자가 14명이나 됐다. 그들은 이처럼 낮은 봉급을 받으며 험한 일자리에서 한국 경제를 떠받쳐주고 있다. 선진국 사람들은 그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한국 사람들이 동남아인이나 흑인들을 얕잡아보는 걸 보면서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우리는 한 해 3700억 달러어치 상품을 외국에 내다 팔고 있고 국내 거주 외국인이 100만 명, 전체 국민의 2%를 넘고 있다. 그런데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외국 문화에 대한 개방성' 부문 평가에서 한국은 55개국 가운데 꼴찌라고 했다.

    국제결혼해서 들어온 동남아 출신 어느 여성은 초등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던 아이가 어느 날 자기가 학교에 다녀온 뒤부터 따돌림을 당하더라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반 친구들이 그 아이 엄마가 동남아 출신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왕따를 시킨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마저 인종차별의 편견에 물들어서는 세계가 한 동네 한 식구마냥 섞여 살 미래 세계의 지도자로 커 나갈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