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에 소설가 복거일씨가 쓴 '이(李) 정권을 짓누르는 노(盧) 정권의 유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유산은 운명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몸, 가르침, 재산과 같은 유산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 근본적 수준에서 결정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선조들이 물려준 사회의 성격이 우리가 다듬어낼 사회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실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해서, 같은 원리들과 정책들이 때와 곳에 따라 독특한 모습들을 빚는다.

    이런 '경로 의존(path-dependence)'은 정권의 경우에 특히 뚜렷하다. 물러난 정권이 한 일들은 새 정권의 유산이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주 엄격하게 규정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할 일들을 규정했을 뿐 아니라 그 일들을 위해 고를 수 있는 길들을 좁혀놓았다. 전 정권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리와 어긋나는 사회주의를 추구했다는 사실은 현 정권이 본질적으로 부정적 유산을 물려받았음을 뜻한다. 자연히 사회주의 정책들을 자유주의 정책들로 바꾸는 일이 현 정권의 핵심적 과제가 되었다.

    이 대통령은 사회주의 정권들 아래서 우리 이념과 체제에 난 상처들을 꼼꼼히 진단하고 그런 진단에 따라 자신의 과제를 설정하고 전략을 세워야 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자신의 유산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심지어 청와대의 정보 체계조차 살피지 않아서 취임 뒤 여러 날 정보 체계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임시 내각으로 삼았다. 그래서 나라의 현황을 점검하고 정부 업무들을 인수해야 할 기구가 정책들을 서둘러 내세우는 데 매달렸다.

    그 기구의 첫 작품은 통신 요금을 행정적 지도를 통해서 낮추겠다는 약속이었다. 아주 사소한 일을 자유주의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이루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정책은 자신의 핵심적 과제도, 그것을 이룰 길도 제대로 모르는 정권의 상징이 되었다.

    반 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왜 잘못되었는지 분명해졌다. 사회주의 정권의 부정적 유산이 얼마나 거대하고 무서운지 새삼 드러났지만 새 정권도 경험을 얻어 일 처리에서 차츰 안정을 찾아간다. 이제 해로운 유산의 극복에 보다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현 정권이 물려받은 가장 해로운 유산은 사회적 분열이다. 노 전 대통령은 사회주의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시민들을 분열시키는 전략을 골랐다. 부유한 계층에 '강남·명문대·재벌'이라는 구체적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는 '가지지 못한 자들'이 '가진 자들'에게 품는 막연한 시기를 구체적 증오로 다듬어냈다. 그리고 가진 자들의 힘을 억제하고 갖지 못한 자들의 어려움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사회주의 정책들을 정당화했다.

    그는 자신의 정책들에서 이익을 볼 집단들이 나오도록 만들어서, 자신이 물러난 뒤에도 그들이 정책들을 지키도록 했다. 지금 잘못된 정책을 걷어내려는 시도는 이내 가진 자들을 위한 조치라는 비난을 받는다.

    사회적 분열을 치유하려면 자유주의 정책들을 통해서 사회 전체의 복지를 늘려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모든 사람들의 물질적 풍요가 늘어날 뿐 아니라 사람들의 심성도 나아진다. 자연히 사회적 갈등이 줄어들고 분열이 치유된다. 경기가 침체하면 모두 삶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심성도 거칠어져 작은 이해의 상충도 큰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경제학자 벤저민 프리드먼(Benjamin Friedman)의 지적대로, 경제 성장엔 도덕적 결과가 따른다.

    노 전 대통령은 사회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사회를 분열시켰다. 이제 이 대통령은 그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자유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이번 광복절은 건국 60주년이기도 해서 우리 유산에 대해 깊이 성찰할 계기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나 국회 연설에서 뚜렷하고 힘찬 전언(傳言)을 내놓지 못했다. 자유주의 정책이 옳은 처방임을 설명하기는 원래 힘들다. '기업 프렌들리'와 같은 품위 없는 구호로는 너무 부족하다. 우리의 밝은 앞날이 산뜻한 심상(心像)들에 담긴 연설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