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에 이 신문 김낭기 인천취재본부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시위 진압에 참여해온 한 의경이 며칠 전 '양심 선언'을 했다. 무슨 내부 비리를 고발하려는 것인가 했는데 그가 낭독했다는 '나는 저항한다'는 양심선언문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거기에는 정부 법 집행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말들이 곳곳에 쓰여 있었다. 정부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폭력'으로, 시위 진압 명령을 '부당한 명령'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것은 전문 시위꾼들이 경찰에 온갖 폭언을 퍼붓고 맨몸으로 발가벗겨 두들겨 패고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이 의경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느꼈던 것들을 얘기하면서 "그렇게 제가 하는 일이 대체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인가를 생각하면 더 괴로워진다"고 했다.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서라면 갓 스물의 젊은이들이 '폭력의 억압적인 도구'가 돼도 괜찮은가" "방패를 들고 시민들 앞에 설 때, 폭력을 행사할 때" "이대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명령에 순응하고…"라는 말들이 이어졌다. 그의 양심 선언 현장에는 '진압의 도구에서 양심의 주체로'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 일이 벌어지자 진보·좌파를 자처하는 일부 신문과 인터넷과 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고무·찬양과 선동에 나섰다. 어떤 교수는 "노무현 정권 때도 의경들이 범죄적 명령을 거부한 일은 없었다"며 "이제는 좀 달라지기 시작한 모양"이라고 찬양했다. "이 의경의 고백은 시위 진압에 동원된 수많은 또래 전·의경들의 말 없는 고통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국가 폭력에 맞서는 제2, 제3의 양심선언이 이어지도록 마음을 모으자"는 선동의 글들도 넘쳐나고 있다.

    지금 정부는 집회와 시위 그 자체를 막으려는 게 아니다. 불법·폭력 시위에 대처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헌법에 따라 법을 집행하고 질서를 유지해야 할 정부의 정당한 권한이자 의무이다. 정부가 그런 의무를 다하려면 상황에 따라서는 물리적 강제력의 사용이 불가피하다. 경찰이 시위꾼들에게 물대포를 쏘아 강제 해산시키고 불법·폭력행위자를 강제 연행하는 게 그것이다. 정부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깡패사회의 폭력과 동일시하며 '국가 폭력' 운운하는 것은 헌법에 따른 국가 운영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같다.

    민주적 헌법에 의해 성립된 정부라도 민심을 근본적으로 배반하면 정당성을 잃을 수도 있다. 현 정부가 당초 쇠고기 협상을 어설프게 하고 국민에게 설명하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이 정부의 무능과 잘못을 탓할 수는 있지만, 어느 모로 보나 민주적 정당성을 문제삼을 소지는 없다. 경찰의 공권력 행사를 '폭력'으로, 불법·폭력 시위 진압 명령을 '범죄적 명령'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수많은 전·의경과 경찰은 연일 계속되는 불법 시위를 진압하느라 파김치가 돼 있다. 그토록 힘겨운 상황에서도 그들을 육체적·정신적으로 버티게 하는 것은 불법에 맞서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믿음, 불법으로부터 법을 보호하고 선량한 시민을 지킨다는 믿음 그 한 가지다.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들에게 '폭력의 도구' 운운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