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에 이 신문 윤영신 경제부 차장대우가 쓴 '좌회전하는 엠비노믹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엠비노믹스가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태어난 지 4개월도 안 돼 명운이 불투명해졌다.

    작은 정부·큰 시장, 성장과 실용, 시장경제, 효율 등의 중심 철학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화석처럼 굳어져 가는 모습이다. 성장주의인지 좌파 분배주의인지, 시장경제를 하자는 건지 관치를 부활시키자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경제정책들이 시계 부품처럼 맞아 돌아가지 않고 계속 충돌한다. 정책의 이념도, 철학도 분명치 않다.

    지금쯤이면 이륙을 위해 가속도를 내야 할 엠비노믹스가 자신의 형체조차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발표한 10조원짜리 고유가 대책은 경기침체가 아주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좌파 분배주의에서도 내놓고 하기 힘든 낯부끄러운 포퓰리즘이다.

    1380만명의 국민에게 현금을 뿌려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 도덕 불감증 그리고 쇠고기 협상에 분노한 민심을 사겠다는 발상이다. 엄청난 국고를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은 작은 정부, 실용,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수조원대의 추경예산을 써서 억지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려고 하는 것도 작은 정부, 실용 철학과 맞지 않고 진정한 성장주의도 아니다. 52개 생필품 리스트를 만들어 물가를 억누르겠다는 'MB물가지수'는 과거 70·80년대 '큰 정부'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MB물가지수를 고안한 사람은 엠비노믹스의 철학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봤는지 궁금하다.

    현 정부는 엠비노믹스라는 우측 깜빡이를 켜놓고서 출발한 후 실제로는 재정, 물가, 환율 등 핵심 정책의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 보류는 비틀거리던 엠비노믹스에 결정타를 날렸다. 공기업 민영화야말로 엠비노믹스의 근간을 이루는 '작은 정부, 큰 시장' 프로젝트였다. 엠비노믹스의 성패가 달린 이슈였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촛불 시위에 놀라서 연기한 것은 엠비노믹스 스스로 종언을 예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민심이 불안하니까 공기업 민영화를 잠시 보류한 것이지 포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공기업 민영화와 같은 간단치 않은 저항 세력이 존재하는 공공 개혁은 한 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 하면 하는 것이고, 안 하면 안 하는 것이지 후퇴 후 다시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촛불 시위 앞에서 이미 기가 꺾인 공기업 민영화를 나중에 재추진해봐야 저항이 약한 공기업 몇 개 손보는 것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서울 도심에 몇만명 모였다고 해서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프로젝트를 손에서 놔버리는 나약한 엠비노믹스로 어떻게 갈등과 분열을 딛고 한국 경제를 끌고 나가려 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영국의 대처가 왜 '철의 여인'으로 불렸겠는가.

    엠비노믹스는 항구를 막 떠나자마자 센 파도를 만났다. 하지만 먼 바다로 나가려면 폭풍과도 싸워 이겨내야 한다. 큰 파도와 만나기도 전에 배가 잠시 흔들린다고 해서 선장이 방향을 잃고 키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면 누가 그 배에 몸을 맡기겠는가. 방만 경영의 대명사인 공기업을 개혁하는 것은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뒤에 국민이 있는데 초반부터 저항에 밀려 정책 방향을 바꿀 이유가 없다. 출발부터 경제 운용의 기본 철학이 흔들리고 경제정책이 불확실성에 빠지는 나라의 미래를 누가 믿고 투자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