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대중의 권력'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말은 자칫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정치가 백성이나 국민의 행복권 실현을 위해 존재하는 한 이런 표현이 적절하겠지만 그렇다고 민심이 곧바로 진리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대사회에서는 민심을 의미하는 대중이 정의나 진리로 탈바꿈해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대답은 바로 민주주의의 개념 안에 자리잡고 있다. 민주주의는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체제를 뜻한다. 즉 대중이 권력자이다보니 그 최종 권력을 향해 감히 비판의 칼을 겨누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등 부작용이 자주 나타나게 마련이다.

    사회적 비판이 자취를 감추다 보니 대중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정의나 진리와 동일시하려든다. 그럴수록 대중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비판할 경우 ‘진리를 외면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자’라는 평가마저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개그우먼 정선희씨는 얼마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쇠고기 시위대’ 구성원 모두가 정의로운 사람들뿐인가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가 대중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일부 프로그램은 인터넷 여론의 협박에 못이겨 기업 광고가 끊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 세상에 집단적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개인적 정의가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발언은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그에 대한 옹호론은 자취를 감춘 채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대중은 권력’이라는 현실 앞에서 어느 누구도 감히 실체적 진실을 논의하려 들지않은 것이다.

    며칠 전 한 TV방송의 저녁 뉴스 시간에서였다. 뉴스 끝 대목에서 앵커는 경찰이 쇠고기 시위대를 향해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린 데 대해 “물론 청와대를 지키는 것도 경찰의 임무이겠지만 그보다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경찰을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시위대가 도로를 불법 점거하고 경찰차를 파손시키는 등 폭력을 행사한 데는 침묵으로 대신했다. 속출하는 경찰 부상자들도 철저히 외면했다.

    책임있는 언론이라면 시위 목적과 시위 수단을 엄격히 구분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하긴 이런 곳일수록 관료들을 향해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개탄하기 일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