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에 이 신문 이인철  교육생활부장이 쓴 '누가 교과부 장관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영삼 정부 말에 이명현 교육부 장관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재정 5% 확보를 이끌어낸 얘기는 유명하다. 1997년 8월 취임해 보니 교육예산안은 이미 4%대로 편성돼 있어 YS의 최대 공약인 ‘교육예산 5%’는 무산될 처지였다. 재정경제원을 졸랐지만 꿈쩍도 하지 않자 그는 재경원 예산실장에게 “정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난 사표를 낼 수밖에 없고 당신도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래도 별 반응이 없자 이 전 장관은 YS를 1시간 동안 독대해 설득한 끝에 5% 약속을 받아냈다. 사표 파동이 나면 시끄러워질 것을 우려해 교육부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1999년 4월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교육부 회의실에서 조사 중이던 감사원 감사반원들에게 “정책감사도 아니고 장관의 정책적 판단까지 문제 삼는 감사는 받을 수 없으니 당장 철수하라”고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 감사원이 서울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자리에 연수원을 지으려다 교육부가 반대하자 ‘보복’ 감사를 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유야 어떻든 피감기관장이 칼자루를 쥔 감사반에 호통을 쳤으니 교육부 직원들은 좌불안석일 수밖에.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감사반장이 다음 날 이 장관에게 ‘사과’를 하고 얼마 뒤 철수했다고 한다.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이 교육부를 찾아와 예산 설명을 할 정도로 이 장관의 위세가 막강했던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광 덕이 컸다.

    교원들은 정년을 단축한 이 장관의 이름과 비슷한 상표의 고추장을 사먹지 않을 정도로 외면했지만 일반직 공무원에게 이 장관은 ‘외풍’을 막아준 바람막이로 통했다.

    참여정부에서 안병영 전 부총리는 2004년 10월 ‘평준화 코드’를 앞세운 청와대-열린우리당 386들과 수능 5등급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급기야 사표까지 내고 버틴 끝에 9등급제와 1등급 4%를 지켰지만 386들의 미움을 사 결국 ‘수능 휴대전화 부정사건’을 구실로 경질됐다. 김신일 전 부총리도 올 2월 로스쿨 탈락 대학을 구제하라는 청와대 요구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청와대는 ‘항명’으로 받아들여 정권 임기 20일을 앞두고 즉각 수리하는 용렬함을 보였다.

    새삼 지난 일을 거론한 것은 새 정부가 교육인적자원부를 혁파하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로 개편한 뒤 교과부와 청와대의 관계와 역할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공계 교수 출신의 김도연 장관이 임명될 때부터 ‘교육=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 과학=김도연 장관’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는데 실제 그런 조짐이 있다.

    요즘 교과부에선 장관 말보다는 청와대 수석실의 동향에 더 촉각을 곤두세운다. 수석실이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이의를 제기하면 불이익을 받을 분위기여서 간부들은 움츠려 있다. 영어공교육 정책이나 최근의 학교자율화 대책 등이 비판을 받는 것도 현장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일방적인 결정을 하는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22일에는 이 수석의 박사학위 지도제자가 김 장관 정책보좌관에 임명됐다.

    이런 상황에서 김 장관이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거나 정책 방향을 소신 있게 제시했다는 말은 듣기 어렵고 ‘누가 장관이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부처와 청와대의 적절한 상호관계와 장관의 역할을 각자 되돌아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