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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9일 사설 <대운하, 총선 공약에선 빼고 뒤로 몰래 추진하나>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의 추진 일정과 방안을 담은 정부 보고서가 유출돼 언론에 의해 공개됐다. 국토해양부가 만든 이 보고서는 오는 4~5월에 민간사업자들로부터 사업 제안서를 받은 뒤 8월 중 관련 법령을 마련하고 내년 4월 착공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다.한나라당은 며칠 전 발표한 총선공약에서 대운하를 뺐다. 강재섭 대표는 "선거 쟁점이 될까봐 뺀 것이 아니라 대운하가 국가의 백년대계에 도움이 되느냐에 대해 여론을 들어보고 원점에서 다시 판단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여당의 대표는 국민 앞에서 "안 할 수도 있다"고까지 밝혔는데 정부는 4월 9일 총선이 끝나자마자 대운하 사업을 밀어붙일 시간표와 행동요령을 이미 마련해둔 것이다.
예상대로 정부는 이 보고서가 민간사업자들로부터 사업 참여 제안이 올 경우에 대비해 실무자가 마련해 둔 안(案)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 앞에서는 입조심을 하고 있지만 민간업자들이 대운하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이나 물류(物流) 수단으로서의 효율성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업자들이 총선이 끝나자마자 이 사업을 하겠다고 달려들리라고 일정을 잡아놓은 부분에서 우선 정치적 냄새가 풍긴다.
우리 풍토에선 업자들이 사업의 경제성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더라도 정부가 끌면 끌려가는 것이 현실이다. 혹시 정부가 뒤편에서 이런 수순(手順)을 밟고 있기에 선거가 끝나면 사업 신청이 들어오리라고 예상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국민들은 대운하에 대해 "토목공사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 "반대의견도 수렴하겠지만 결국은 그 시대 지도자의 결단에 의해 이뤄질 과제"(이재오 의원)라는 식의 대운하 사업의 주무장관이나 실력자들의 발언을 기억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선거 쟁점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대운하를 안 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중대한 문제다.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사기행위와 다를 바 없다.
공천탈락자들까지 대운하를 공격의 소재로 삼고 실세 의원 선거구에서 상대 후보가 이 이슈로 재미를 본다고 하니까 한나라당 안에 일단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흐름이 만들어 질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고 이명박 후보가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건 대선에서 500만표 차로 압승하고서도 여당을 앞세워 '겉으로는 재검토' '안으로는 은밀히 진행'이라는 이중(二重) 수단을 구사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너무나 초라하고 군색하다.
이런 오해를 깔끔하게 씻으려면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대운하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즉각 밝혀야 한다. 그것이 대운하가 지나갈 지역의 유권자들에 대한 기본 의무이고, 이 문제를 지켜보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