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 '기자의 눈'에 이 신문 김승련 정치부 기자가 쓴 <정당이 기회주의자 받는 문(門) '비공개 공천신청'>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삼웅 독립기념관장, 김정길 대한체육회장, 손혁재 전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이들의 공통점은 4·9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 ‘비공개’를 전제로 공천을 신청했다는 점이다. 정 전 장관과 최 전 장관은 한나라당, 다른 사람들은 민주당 공천을 희망했다.
비공개 공천 신청은 정치권의 관행 중 하나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대학교수나 기업인이 야당에 공천 신청을 하려면 이런 정도의 ‘신변 보장책’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진 2008년 선거에서 비공개 접수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계속되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타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넘어온 관료 출신 정치인도 ‘철새’라는 말을 피하려 했고, 과거 정권의 통치철학 전파에 앞장섰던 이도 은밀히 공천장을 민주당에 접수시켰으며, 정치적 중립이 중요한 시민단체의 간부도 사임서 제출보다 공천 신청서를 먼저 민주당에 접수시켰다. 모두 ‘비공개의 그늘’에 몸을 감추려 했다.
이들은 어쩌다 이름이 알려졌을 뿐이고 올 선거에서도 이런 비공개 신청자는 수십 명에 이른다. 양당의 당직자들은 접수창구에서 “이름 공개는 말아 달라”는 부탁을 수없이 들었다. 민주당의 한 거물 정치인은 비례대표 신청 때 고위 당직자를 불러다가 ‘조용히 접수시키라’고 지시했다는 말도 들려온다.
이런 행태는 지역과 직능을 대표하는 299명의 국회의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예비후보의 처신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회주의적이다. 이들은 ‘공천 받으면 공개, 못 받으면 끝내 비공개’라는 보호막을 바라고 있다. 특정 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는 것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면서 공천은 왜 받으려 하는가.
정당도 비공개 관행에 무신경하다는 점에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 비공개 신청자의 한 측근인사는 24일 통화에서 “당에서 ‘비공개 제도를 활용하라’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우리 정당들은 왜 총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자가 출마 의사 자체를 감추려 하는 이중성을 그대로 수용하는 걸까. 취재현장에서 만난 정당인들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한 구석 부끄러운 게 있다면 우리 당의 선거에 나서지 마시라”며 비공개 접수를 거부하는 정당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