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4·9총선―나머지 절반의 싸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10년’의 연장이냐 종식이냐의 싸움은 작년 12월 19일 ‘이명박 당선’으로 이미 끝난 것이라고 할 사람들이 물론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이명박 정부의 유인촌 문화부 장관까지도 “이제는 좌파 우파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불과 며칠 만에 그 장관은 노무현 정권 때 발탁된 ‘코드’ 집단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 역시 “김대중 노무현 추종세력은 물러나라”고 말했다. 이런 말들은 결국, “좌우 따지지 않겠다”던 새 집권세력의 섣부른 ‘멋 부리기’가 불과 사흘도 못돼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른 ‘초현실적’ 수사학이었음을 그들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이 싸움에는 제2라운드가 남았다. 오는 4·9총선이 그 마당이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의 구호 아래 우파이면서도 우파만은 아니라는 듯, 그리고 좌파가 아니면서도 좌파와도 춤을 출 수 있다는 식으로 처신해 왔다. 그럼에도 그들의 그런 양시(兩是) 양비(兩非)론적 ‘수렴(收斂)’론은 그들이 기대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왔다. 4·9 총선이 불과 3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명박의 천하 수렴’은 고사하고 지난 10년의 장본인들이 ‘장관인사 실책’에 힘입어 다시 거뜬하게 되살아나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쫓기는 자의 표정 아닌 공격하는 자의 표정을 띠고서….

    이 역전(逆轉) 현상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만의 정파적인 곤경임을 넘어서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지난 대선(大選)의 국민적 선택을 ‘말짱 도루묵’으로 돌릴 수도 있는 반동적 사태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4·9총선을 그런 역류(逆流)에 대한 재(再)반격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12·19 정권교체가 국회, 공공부문, 문화계 등 시민사회 각 부문을 특정 이념의 일방적 놀이터로 내준 상태에서 치러진 절반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나머지 절반의 싸움인 셈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그런 부문들에 진(陳)을 친 ‘코드’ 집단이 그동안 국가예산을 얼마나 어떻게 우려내고 써 버렸는지, 그리고 그것이 적정하고 타당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재고(在庫)조사를 실시하고, 그 내막을 4·9총선의 심판에 맡기는 일이다. 예컨대 KBS 정연주와 ‘코드’ 문화단체들의 예산운용 실태, 적자경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편파적 독식주의 등이 과연 어떠했는지를 국민에게 소상하게 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유권자들이 충분히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냥 말로만 물러나라고 한다 해서 순순히 물러날 저 사람들이 아니다.

    지난 시대 정부가 이적단체로 판시된 친북단체들에 막대한 행사비를 지원한 사례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쟁점화되어야 한다. 2006년 상반기에만 해도 두 친북단체의 친북행사에 각각 4600만원과 91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돼 있다. 국민세금을 정말 이렇게 함부로 써도 괜찮은 것인가? 납세자들은 자신의 세금이 “우리 민족청년은 힘을 굳게 모아 내부에 있는 모든 반(反)통일 세력과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어쩌고 한 남북 주사파 공동행사의 뒷돈으로 들어간 사실을 알 권리뿐 아니라 알 의무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 내막의 적정성 여부를 가리기 위해 추상같은 감사(監査)의 칼을 들어야 한다.

    이 밖에도 숱한 운동단체들에 정부의 지원금, 아니 국민세금이 흘러들어갔다. 일부는 국가예산을 그렇게 먹어 치우면서 현역 군인들을 쥐어 패고 죽창으로 전경의 눈을 찌른 현장에 자기네 단체의 이름을 걸어 놓기도 했다. 대한민국 진영은 이런 방만한 ‘그들끼리의 돈 잔치’를 4·9 총선의 국민적 공분으로 점화시켜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야당 같은 환경”이라고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개탄했다. 그러나 ‘발목 잡힌 대통령’의 그런 어려움은 결코 싸우지 않으면서 공짜로 극복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