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6일자 조선일보 사설에는 ‘가족 사기단, 뭘 믿고 대한민국 우습게 봤을까’라는 제하의 글이 실렸다. 한마디로 경악스러운 사설논조다. 어떻게 대 조선일보가 이런 형편없는 사설을 함부로 쓸 수 있었는지 자못 분노가 치민다.

    아직도 재판 중에 있고, 대법원 판결도 나지 않은 피고인 김경준 씨를, 그것도 미국에 있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묶어 ‘가족 사기단’이라는 살인적인 멍에와 굴레를 씌워놓고 온 국민 앞에서 지상 공개 처형할 수 있는 조선일보는 과연 과거 우리 국민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신문이었던가. 조선일보가 언제부터 타인의 인격과 인권을 말살 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가진 언론이었던가.

    아무리 새로운 권력의 눈치를 보고 싶어 하는 언론일지라도 사설을 통하여 수사 중에 있는 ‘피고인’을 언론사가 마치 ‘확정 판결 받은 범법자’로 취급하여 한 개인의 인격과 명예를 살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살상해서도 안 될 것이다.

    더우기 어떤 언론사라 할지라도 재판 중에 있는 피의자와 피의자 가족을 일컬어 ‘가족 사기단’이라는 엄청난 제목까지 사용함으로서 한 가족의 인격과 명예를 무자비하게 언어로 살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살상할 권리도 없을 것이다.

    김경준과 그의 가족, 어린 딸까지도 ‘가족 사기단’의 구성원인가? 그렇다면 조선일보 그 사설자는 ‘인격 말살단’인가?

    그 사설을 읽노라면, 선거 중에 있는 한나라당 대변인의 성명을 읽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대한민국에서 으뜸간다던 정론사인 조선일보가 어떤 연유로 재판 중에 있는 김경준 씨와 미국에 있는 그의 가족을 싸잡아 ‘가족 사기단’이라는 포고문으로 인격살인을 했어야만 했는가. 조선일보와 김경준 씨가 무슨 원한 관계라도 있는가. 자유 민주주의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정론 기자 생활을 거쳐 논설위원이 된 사람이 어떻게 해서 ‘가족 사기단’ 운운한 사설과 같은 무지막지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극심한 의구심에 사로잡힌다. 필자가 가장 애독했던 신문인 조선일보가 언제부터 이토록 인권을 무시하고 인격을 난도질하는 무소불위의 폭력 언론이 되었는가?

    형(刑) 확정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소된 피의자 신분일 뿐인 김경준 씨와 그의 처 이보라, 그의 누나인 에리카 김 씨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김경준 씨의 자녀 일가를 그 막강한 ‘조선일보’의 사설대에 올려놓고 그 무서운 필봉으로 ‘가족 사기단’이라는 사형 선고를 내리면서 집중사격하고 있는 모습은 한마디로 야만적인 학살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다.

    살인마에 대한 선고보다 더욱 무섭고, 잔인한 수법으로 ‘김경준’ 씨 가족을 폭격하고 린치를 가하고 있는 조선일보 그 사설의 내용은 마치 ‘나치스’시대 ‘광기(狂氣)’에 사로 잡혀 유태인을 벌거벗겨 놓고 화차에 태워 ‘가스 살인’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김경준 씨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미국에서도… 조국 대한민국에서도… 그토록 조선일보 사설이 그의 가족을 인격 살인 해놓았으니 그들 가족은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하는가. 조선일보 사설이 김경준 씨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지는 않은지…

    김경준 씨와 그 가족들은 왜 이토록 자유 대한민국의 ‘조선일보’로부터 ‘가족 집단 사형 선고’를 받아야만 했으며, 고유한 인격과 인권을 압살 당해야만 했던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 2007 대선 때문인가?

    이 막강한 조선일보를 인간의 이름으로, 또 정의의 이름으로 지상(紙上) 고발하고 싶은 심정이다. 언론이 대권이라는 권력 싸움의 틈바구니에서 ‘아유자’로 전락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퇴조이자, 자유 언론이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징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를 사랑했던 한 독자의 이름으로 조선일보의 양식 있는 답변을 기다린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썼던 ‘그렇다면 김경준씨 딸도 사기단원인가?’라는 제하의 글을 일부 인용해 제시하고자 한다.

    ‘(…중략) 언론이 大選싸움판에서 사용된 선동적이고 인권침해적 용어를 받아쓴다는 것은 직업적 자존심의 문제이다. 보수언론은 특히 한국의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가 개인의 자유와 法治주의라는 점을 한시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國權도 人權위에 서야 튼튼하다.

    특히 형사 피의자의 인권이 언론에 의해서 유린되는 사회는 법치도 민주도 아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인류가 강물처럼 흘린 피의 代價로 확립한 원칙이다. 감정이나 만용으로써 무시하기엔 너무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1948년 이후 그 소중한 인류의 자산을 공짜로 이용하면서 이런 식으로 유린한다. 이 원칙을 지키면 오보도 덜하게 된다. 정보부 발표만 믿고서 李穗根을 '희대의 이중간첩'이라고 욕했던 언론은 이수근이 위장귀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死後 재심이 개시되었다는 뉴스는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그래도 노무현 정권을 '정권사기단', 김정일 정권을 '가족학살단'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 언론이 '가족사기단'이라는 표현을 했다면 정의감의 발로라고 이해해줄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정의감은 관용과 균형감각 위에 서야 한다. (후략…)’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